매일신문

[3040 광장] 디자이너들이여 대구로 오라

매년 2, 3월엔 그해 가을'겨울 시즌 의상들로 채워진 패션쇼가 세계 주요 도시에서 차례로 열린다. 패션쇼는 디자이너가 자신의 생각이나 가치관을 반영하여 만들어낸 의상이나 액세서리 등을 바이어나 소비자에게 짧지만 확실한 스토리로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지난 7일부터 9일까지 3일 동안 우리 대구에서도 올해 24회째 맞는 대구컬렉션이 성대하게 열렸다. 지역 디자이너들은 대구컬렉션을 통해 섬유패션산업의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 또한 고부가가치가 있는 패션산업을 더욱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유도하고자 자신들의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이번 컬렉션에는 여성복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다양한 남성복, 한복, 웨딩드레스, 캐주얼웨어까지 다양한 분야의 디자이너들이 참가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지역 중견 디자이너 브랜드 이노센스의 런웨이를 시작으로, 9일까지 총 10차례의 패션쇼가 계속 펼쳐졌다. 이번 컬렉션에서 총 300여 벌 이상의 옷이 무대에 나왔다.

세계화, 국제화된 시대에 살고 있는 요즘, 패션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도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패션의 범위가 단순 소비상품을 넘어 사치, 낭비의 개념이 아닌 자아를 표현하고 시각적으로 즐길 수 있는 매개체로 인식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이제는 패션쇼가 패션 상품과 함께 하나의 문화예술로 자리 잡으면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대구컬렉션도 시민들과 함께할 수 있는 우리 지역의 대표적 문화행사로 평가되어야 한다. 하지만 디자이너의 열정과 기획이 녹아 있는 훌륭한 무대가 여전히 소수 몇 명의 관심으로 그치는 것 같아 아쉽다.

지난번 컬렉션에서 몇 명의 문화계 인사들이 패션쇼를 본 적이 있다. 패션쇼를 보면서 연신 "이렇게 좋은 복합문화공연이 공짜인데 지금까지 왜 한 번도 보지 않았을까"라고들 말했다. 그러면서 "패션쇼가 이렇게 재미있는 줄 안다면 정말 많은 시민들이 찾아올 텐데 아쉽다"고도 했다. 강렬한 음악과 짧은 시간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한 의상들, 화려한 조명과 모델들의 워킹은 누가 봐도 한눈에 매력적일 만큼 좋은 종합예술이나 마찬가지다.

디자이너의 방향성에 따라 한 번의 이벤트에 그치는 컬렉션이 아니라 상품을 구매하는 바이어와 소매업체에 일임하는 세분화된 유통 시스템의 확산으로 경쟁 소매업체 간의 차별성 있는 경쟁을 독려하며 정부의 지속적인 패션산업 부문의 다양한 지원 정책이 따라준다면 우리의 대구컬렉션 또한 세계 주요 컬렉션으로 성장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사실 현재 대구컬렉션에 대한 시민들의 문화적 인지도와 참여도는 대구컬렉션의 오래된 역사에 비춰볼 때 기대에 못 미치는 듯하다.

17년 전 필자는 첫 아이 출산 2주 만에 대구컬렉션이 열리는 장소로 향했던 기억이 있다. 패션인이었기에 친정엄마의 극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쇼를 꼭 보겠다는 의지로 향한 컬렉션장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당시 출산 2주 만에 외출을 감행했던 것에 대해 절대 후회하지 않을 만큼 큰 감동을 받았다. 이제 내가 옷을 무대에 올리는 디자이너 입장에서, 과연 그때 내가 받은 감동만큼 관객들에게 감동을 전하고 있는지 머릿속이 항상 복잡하다. 그래도 그 기억이 늘 나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섬유패션도시인 대구에서의 컬렉션은 국내 패션에 대한 시민들의 적극적인 관심도가 높아져야지만 패션이 자아를 표현하고 나아가 문화로 즐길 수 있는 영역으로 발전할 수 있는 성장판이 될 거라 생각한다.

물론 패션인들이 기울이고 쏟아야 하는 정성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특히 컬렉션의 질적 향상은 필수과제다. 소중하게 이뤄놓은 대구컬렉션의 역사를 더욱더 빛날 수 있도록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대구컬렉션이 좀 더 확고하게 자리매김하고 패션 산업의 발전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유능한 지역 디자이너들의 이탈을 막고 실력을 갖춘 디자이너들이 오히려 대구로 근거지를 옮길 수 있는 비전들을 계속해서 보여줘야 할 것이다. 대구컬렉션이 세계 속에서 대구 섬유패션산업의 진면목과 위상을 드높여 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김건이/패션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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