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차라리 도망쳐라

4'11 총선을 앞두고 보수 진영이 궁지에 몰렸다. 이른바 개혁 진영의 '무상 복지 공세'에 엮여 덩달아 복지 공세를 펴는가 하면, 공천 탈락에 따른 진영 내 반발과 제3의 보수 세력 등장으로 갈가리 찢어지는 형국이다.

동양 고전 '삼십육계'의 마지막 계인 36계는 '주위상'(走爲上) 즉 '도망가는 것이 상책'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도망'은 곧바로 '패전'을 일컫지 않는다. 손자병법과 함께 동양 최고의 병법서로 알려져 있는 '삼십육계'의 36번째 계인 '주위상'에 따르면, 적의 기세가 강하고, 세월이 내 편이 아닐 때 취할 수 있는 길은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투항하는 것이고, 둘째는 강화하는 것이고 마지막은 도망치는 길이다. 투항은 완전한 패배를, 강화는 절반의 패배를 의미하지만, 도망은 패배가 아니라 작전상 후퇴에 해당한다. 당장은 물러나지만 나의 군사를 잃지 않았으므로 훗날을 기약할 수 있다는 말이다.

장수가 적과 맞붙는 대신 도망을 택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도망을 택하는 것은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서다. 이때 가장 중요한 목표는 안전하게 군사를 물리는 것이다. 도망가는 와중에 대열이 흩어지고, 적의 추격을 받아 군사를 잃는다면 이는 '도망'이 아니라 '패전'에 해당한다.

전설은 못 만드는 이야기가 없고, 전승(傳承)은 모르는 게 없다. 마찬가지로 총선 승리의 기대에 부푼 개혁 진영은 갖가지 매력적인 공약 폭탄을 쏟아부을 것이다. 보수 진영은 이에 대응한답시고 '보수의 가치'를 훼손하면서 맞불 작전을 펴서는 안 된다. 대신 '매력적인 구호가 늘 진실은 아님'을 충실히 알리는 방법으로 맞서야 한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물러서는 것이 옳다. 눈앞의 승리를 위해 '보수의 가치=나의 군대'를 훼손하는 것은 이기고도 지는 전투, 즉 '나의 군사'를 사지로 몰아넣어 재기 불능 상태에 빠뜨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항우와 오랜 쟁패 끝에 중국을 통일한 유방, 삼국 중 가장 강한 나라를 건설한 조조, 와신상담 끝에 승리한 월왕 구천, 명나라 건국에 지대한 공을 세우고도 홀연히 물러난 유백온,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전봉 조치에 두말없이 따랐던 도쿠가와 이에야스, 국민당의 공세를 피해 대장정에 올랐던 모택동은 모두 물러남으로써 최후의 승리를 차지했다.

한국의 보수 진영은 '보수의 가치'를 버리면서까지 전면전을 펼칠 것이 아니라, 물러나 '보수의 가치'를 지킴으로써 반격의 기회를 찾아야 한다.

조두진 문화부차장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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