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과학수사의 힘!… 피해자가 가해자 둔갑 진실 캐다

대구지검 안동지청 박철 검사, 1여년간 끈질긴 추적 재조사

"저도 자식을 둔 부모 입장에서, 남겨진 두 딸을 위해 남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혀 달라는 유족의 호소를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1년여 동안 재조사를 통해 자칫 묻혀질 뻔한 사건의 진실을 밝힐 수 있어서 기쁩니다."

검찰이 1년 동안의 끈질긴 과학수사를 통해 경찰에서 교통사고 가해자로 몰렸던 피해자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혀냈다.

2011년 4월 어느날 대구지검 안동지청 박철(39) 검사에게 한 여인이 찾아왔다. 지난 2010년 12월 8일 오후 8시 55분쯤 안동시 수상동 한 식당 앞 도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때문이었다. 경찰이 조사한 교통사고의 전모는 숨진 유모(47) 씨가 자신의 쏘나타 승용차로 앞서가던 1t 트럭(운전자 정모 씨'47) 뒷부분을 추돌한 뒤 그 자리에서 숨졌다는 것. 박 검사를 찾은 여인은 이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된 유 씨의 부인 서모(46) 씨였다.

서 씨는 박 검사에게 "두 딸을 남겨두고 억울한 누명을 쓴 채 저 세상으로 떠난 남편의 죽음에 대해 진실만은 꼭 밝히고 싶다"고 간곡히 호소해왔다.

서 씨는 사고 현장에서 트럭이 조금 비켜 있었던 점에 의문을 갖고, 사설감정기관에 사고 분석을 의뢰해 '트럭이 정상적으로 진행한 것이 아니라 중앙선을 넘어 불법 유턴을 하다 사고가 났을 수도 있다'는 분석을 제시하는 등 경찰 조사에 강한 의혹을 내비쳤다.

박 검사는 이 때부터 사건 전반에 걸쳐 다시 꼼꼼히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피해자로 결론 지어졌던 트럭 운전자 정 씨는 사고 당시 숨진 유 씨가 음주상태였고, 목격자가 없는 상태에서 유 씨의 승용차가 자신의 화물차를 뒤에서 들이받았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경찰은 정 씨의 진술과 도로교통공단의 사고 조사 분석 결과를 토대로 숨진 유 씨가 음주상태에서 전방을 살피지 않아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유 씨를 가해자로 결론 짓고 검찰에 송치했다.

박 검사는 서 씨의 진정서를 접수받아 재수사에 나서면서 직접 현장을 찾아 당시 상황을 재연해 트럭이 정차했던 위치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정밀 재조사를 의뢰해 트럭이 중앙선을 침범해 교통사고가 발생한 사실을 뒤늦게 확인했다.

특히 박 검사는 정 씨와 함께 타고 있었던 정 씨의 부인 이모 씨가 경찰조사에서 '당시 잠을 자고 있어 사고 상황을 모른다'고 진술했으나, 이날 사고는 정 씨 부부가 식사를 마치고 출발한 직후 발생한 것이어서 진술에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결국 박 검사는 정 씨와 정 씨의 부인을 소환해 조사를 벌여 '중앙선을 침범해 교통사고가 발생했다'는 취지의 자백을 받아냈다.

검찰 관계자는 "이 사건은 경찰이 교통사고 당사자의 진술에만 의존해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상황을 재조사해 사건의 실체를 밝힘으로써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억울한 누명을 벗겼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안동'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권오석기자 stone5@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