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이식 수술을 받고 돌연 자취를 감췄던 간암 환자가 3년 만에 찾아왔어요. 장기를 이식받은 암환자는 장기가 거부반응을 일으킬 것에 대비해 반드시 후속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환자는 아무런 치료 없이 3년 넘게 버틴 데다 당뇨합병증까지 앓고 있었어요. 살아있는 게 기적이었습니다."
담당의사가 말하는 장금석(가명'63) 씨의 이야기다. 간암을 앓던 중 운 좋게 간을 이식받았지만 후속 치료를 받을 돈이 없어 자취를 감췄던 그는 최근 망가진 몸을 이끌고 다시 병원을 찾았다.
◆날개 잘린 기러기 아빠
13일 오후 대구 중구 계명대 동산의료원 한 병실. 붕대로 두껍게 감싼 금석 씨의 왼쪽 발이 눈에 들어왔다. "당뇨합병증으로 발이 썩었습니다. 병원에서는 발가락 끝을 잘라내야 한다고 했어요."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금석 씨는 대구 교동시장에서 제법 규모가 큰 귀금속 가게를 운영했다. "장사가 잘될 때는 하루 1천만원이 넘는 매출을 올린 적도 있어요. 사업을 하며 아내도 만났고, 1974년 당시 대구에서 예식 비용이 가장 비쌌던 금호관광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어요."
금석 씨는 1997년 남매를 미국으로 유학보낼 정도로 그의 경제사정은 여유로웠다. 아내는 아이들을 돌보러 미국으로 떠나 금석 씨는 기러기 아빠가 됐다.
그러던 중 IMF를 맞아 금석 씨의 사업은 큰 타격을 입었다. 동업자들과 엉겁결에 귀금속 밀수에 손을 댔다가 큰돈을 날리기도 했다. 큰 빚을 지고 귀금속 가게를 정리한 뒤 이런저런 사업에 손을 댔다가 실패를 반복하며 끝없이 추락한 금석 씨는 결국 기초생활수급자 신세가 됐다.
미국에 있는 가족도 금석 씨로부터 생활비 지원이 끊기자 고달픈 이민 생활을 시작했다. "대구에서 고등학생 때까지 야구선수를 했던 아들은 꿈을 포기하고 현재 식료품 배달 일을 하고 있어요. 영어실력이 뛰어나 영문학 교수가 되겠다던 딸도 공부를 포기했습니다. 가족 모두가 먹고살려고 발버둥치며 10여 년이 흘렀어요. 가족 간 왕래는 끊긴 지 오래입니다."
◆치료비 없어 투병생활조차 사치
금석 씨 몸에 병마가 찾아온 것은 지난 2008년이었다. 한날은 소변이 나오지 않아 복통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간암 판정을 내렸고, 금석 씨는 그길로 곧장 병원에 입원했다. 당뇨까지 앓고 있던 금석 씨의 몸에 암세포가 빠르게 퍼지고 있어 치료가 시급했다.
당시 담당의사였던 계명대 동산의료원 강구정 교수는 홀로 투병생활을 하던 금석 씨의 모습을 떠올렸다. "며칠에 한 번씩 복수를 뽑아내려면 곁에는 보호자의 간병이 꼭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금석 씨는 늘 홀로 병상을 지켰어요. 가족이 찾지 않는 암환자는 금석 씨가 유일했습니다."
외롭게 투병생활을 하던 금석 씨에게 2008년 10월, 한줄기 빛이 나타났다. 서울의 한 병원에 있는 뇌사자로부터 간을 이식받게 된 것. 10시간의 대수술 끝에 금석 씨는 새 생명을 얻었다.
하지만 금석 씨는 수술을 받고 며칠 지나지 않아 돌연 퇴원했고, 다시는 병원에 나타나지 않았다. 후속 치료비를 더는 감당할 수 없어서였다. 그리고 3년 만에 금석 씨는 자신이 수술을 받았던 병원 응급실로 실려 왔다. 묘한 운명이었다. 자신의 간 이식 수술을 집도했던 강구정 교수를 다시 만나 치료를 받게 된 것이다.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다시 일반 병실로 침상을 옮기며 금석 씨의 몸 상태는 점점 호전됐다. 간 이식 수술을 받은 이후 3년 동안 몸을 아무렇게나 방치한 것을 고려하면 기적 같은 일이다.
금석 씨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이식받은 간이 거부 반응을 일으키거나 간암이 재발할 것에 대비한 면역억제제 치료다. 또 당뇨합병증 치료도 병행해야 한다.
문제는 치료비다. 금석 씨는 현재 기초생활수급비로 매달 17만원을 받고 있다. 미국에 있는 남매가 종종 수십만원 정도의 돈을 보내오기도 하지만 최근 뜸해졌다.
게다가 금석 씨에게는 10여 년 전부터 대구의 한 요양병원에 어머니(90)가 입원해 있다. 금석 씨는 기초생활수급비와 남매가 보내오는 돈을 모아 매달 19만원씩 어머니의 입원비와 간병인 비용을 부담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의 치료비도 감당해야해 앞으로 어떻게 늙은 노모를 수발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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