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변화의 주역

유신 체제가 붕괴된 직후 당시 하와이대 서대숙 교수가 방한, 북한 관련 특강을 한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때려잡자 김일성' '쳐부수자 공산당'의 구호가 익숙한 시대였다. 서 교수는 학생들에게 "북한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말을 했다. 때려잡을, 뿔 달린 괴물이 사는 곳이 아니라 같이 말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사는 땅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철벽 통제는 결국 북한 주민들에 의해 풀릴 것이라고 진단했다. 봉급생활자가 많아지고 먹고사는 데 여유가 생기면 북한에도 자유의 바람이 불어와 장막을 저절로 걷게 된다는 진단이었다.

당시로선 파격적인 서 교수의 진단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지만 북한의 변화는 북한 내부의 힘에 의해 이뤄질 것이라는 예측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방한, 동아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현대의 통신 기술이 조만간 북한에도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면 북한 주민들도 서로 의견을 교환하게 되고 북한의 정치(권력)도 바뀔 것"이라고 했다. 통신 기술의 엄청난 영향력을 매개로 북한 주민들의 생각이 함께 모이면 북한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이뤄진다는 말이다,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도 우리 국민들이 썼다. 행여 누가 들을세라 주위를 살피지 않고도 정부를 비판하고, 대통령을 향해 독설을 퍼부어도 잡혀가지 않는 자유는 국민들이 일군 소득이다. 자유를 갈망한 국민들의 목소리와 몸짓이 정치체제를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지난가을 정치 지형은 요동을 쳤다. 여야 정당은 변화를 선언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정치권력을 국민들에게 돌려주겠다고 했다. 기득권을 버리고 국민들과 눈높이를 같이하며 머리부터 발까지 모든 것을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다시 선거의 계절이 다가왔다.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은 공천 과정은 과거와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변화는 희생 없이는 이루기가 쉽지 않다. 이것저것 다 봐주고서는 바꿀 게 없다. 말로는 변화를 외치지만 정치권 스스로 기존의 제도와 관행을 버릴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너무 순진하다. 북한의 정치체제 변화가 북한 주민들의 손에서 나오리라는 진단처럼 우리 정치의 변화도 국민들의 손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많이 가지려면 우선 아무것도 가지지 않아야 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서영관 논설주간 seo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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