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카모메 식당'과 店房(점방)의 추억

소박한 음식으로 사람들의 상처를 감싸주는 식당이 있다. 동명 영화의 원작인 소설 '카모메 식당'(무레 요코 지음)은 일본의 중년 여성이 연고도 없는 핀란드 헬싱키의 한 마을에 작은 일본식 식당을 내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혼자서 식당을 꾸려 나가는 여주인과 다양한 사연을 안고 훌쩍 핀란드를 찾은 여자들이 이 식당에서 만난다. 오니기리(일본식 주먹밥)와 시나몬 롤로 손님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카모메 식당'은 상처받은 이들에게 영혼의 안식처가 된다.

추억이 깃든 음식은 외로움을 달랜다. 실제로 추억의 음식이 외로움을 달래주는 효과가 입증되기도 했다. 미국 버펄로대학의 조던 트로이시 연구원은 어릴 때 집에서 자주 먹던 친숙하고 추억이 깃든 음식이 마음을 달래고 감정을 추스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실험 참여자를 두 그룹으로 나눴다. 한 그룹의 사람들에게는 가까운 사람과 다툰 일에 대해 6분 동안 글을 쓰도록 했다. 다른 그룹은 감정 기복과는 관계없는 주제로 글을 썼다. 그런 다음 연구진은 각 그룹을 또 둘로 나눴다. 한 그룹에겐 친숙하고 추억이 깃든 음식을 먹은 기억에 대해 글을 쓰도록 했고, 다른 그룹은 새로운 음식에 대한 글을 쓰게 했다. 실험 결과에 따르면 가까운 사람과 다툰 일에 대해 쓴 그룹은 외로움을 느꼈다. 이들 중 친숙한 음식에 대해 글을 쓴 그룹은 주로 그 음식을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먹던 기억에 대해 쓰면서 다투기 전의 관계를 떠올렸다. 그 결과, 그들이 느끼는 외로움도 크게 줄었다. 또 다른 실험에서는 따뜻한 닭고기 수프를 먹으면 사람들이 인간관계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허허로울 때면 결혼 전까지 20여 년을 살던 동네를 돌아다니곤 했다. 동네가 재건축 사업으로 인해 아파트단지로 바뀌기 전까지만 해도 그곳에 가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삶의 의욕이 생겨났다. 주류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곳이다. 손수레 한 대가 겨우 다니는 꼬불꼬불한 골목길로 이어지는 동네였지만,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곳이었다. 구멍가게와 쌀집(때론 연탄집)이 있고, 세탁소와 전파상, 양품점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달걀 한 개, 라면 한 개를 사고팔면서도 살갑게 주고받는 인사말이 있었고, 외상도 가능했다. 점방(店房) 주인아줌마가 급한 일이 생겼을 땐 잠시 봐달라며 이웃 사람에게 점방을 맡기는 신뢰도 있었다. 때론 다툼과 시기도 있었다. 이런 애증과 애환은 그 자체가 삶의 한 부분이었다.

가끔 술자리에서 추억을 얘기하면 나이가 들었다고 타박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맞는 말인 것 같다. 나이가 들면 외롭고(어느 시인은 '외로우니까 사람'이라고 했다), 외로우니까 추억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추억은 외로움을 덜어주고 영혼을 따뜻하게 한다.

우리의 삶에 얽힌 추억거리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사라지고 있다. 자고 일어나면 동네에서 정들었던 점방들이 간판을 바꿔 단다. 빵집은 베이커리로, 다방은 커피 전문 카페로 바뀌고, 방앗간은 떡카페, 슈퍼마켓은 편의점이나 휴대전화 대리점이 된다. 그 이름만으로도 정겨운 '맛미당'(이하 가명) '청송방앗간' '의성쌀집' '약속다방' '만물상회' '우리슈퍼' '왕자문방구' '똘이분식' '김약국' 등은 찾아볼 수 없다. 세련된 인테리어와 깔끔한 음식들로 포장된 대기업 프랜차이즈 음식점과 베이커리들은 '추억의 맛'을 몰아내고 있다. 대자본과 효율적 시스템을 내세운 프랜차이즈에는 사람다움이 끼어들 여지가 별로 없다. 주인아줌마 특유의 손맛이 배어 있는 떡볶이 맛, 세월의 더께를 간직한 동네 빵집의 맛은 이제 뇌리에만 기억될 뿐이다.

'집중과 선택' '효율성과 경쟁력'이 지배 원칙이 된 요즘 세상에 '약속다방'과 '똘이분식'이 살아남는 것은 힘든 일이다. 정부가 시설을 고쳐주고 카드 수수료를 조금 낮춰 준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수 있을까? 생선 한 마리, 과일 몇 개를 사는데도 차를 몰고 대형마트에 간다. 커피 한 잔을 마셔도 유명 브랜드 카페를 찾는 것이 일상이 됐다. 동네 점방과 전통시장을 살리는 것은 소중한 추억과 사람다움을 지켜가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공정 무역' '착한 소비'를 거론하며 '개념 남녀' 행세를 한다. 그러면서도 정작 우리 동네의 점방이나 전통시장을 찾는 데는 인색하다.

김교영/특집부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