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현수의 시와 함께] 더미(Dummy)

하나의 얼굴

하나의 직업에 종사한다

센서로 꽉 찬 내부는

그대와 흡사한

질량과 가속도와 비례와 비릿한 석유의 자식

정면충돌 측면충돌 후면충돌 공중충돌…

희생과 좌초의

다양한 충돌 실험에도

일체 비명 따윈 지르지 않는다

유리를 산산조각 내며 튕기거나 박살나도

말끔히 포장되는

남자 더미 여자 더미 임산부 더미 태아 더미 더미 더미 더미들

나의 동공에서

영혼 따위를 읽는 자는 없지만

절대 죽지 않는

한번쯤, 울고 싶은

몸뚱이

  강신애

현실과 환상이 팽팽하게 긴장하고 있는 시를 보여주는 강신애 시인의 작품입니다. 더미(dummy)라는 실험용 인체모형을 통해 사람의 본질을 생각하게 합니다. 인간을 대신하여 수없이 파괴되는 더미들에서 "한번쯤, 울고 싶은/ 몸뚱이"를 생각하는 일은 우리의 비인간성에 대한 고발이겠지요.

'맹자'에 보면 공자님의 말씀이 나오지요. 순장에 쓰일 나무 인형을 처음으로 만든 사람은 천벌을 받아 후손이 없을 것이라는 말씀. 인간을 닮은 인형을 흙에 파묻어버릴 생각을 한 것이 잔인함 그 자체라는 것이지요. 나무 인형 하나 만든 것도 잔인한 것이거늘, 부수고 깨트리기 위해 실험용 더미를 양산하는 우리는 얼마나 인간으로부터 멀리 와버린 것인지요.

시인·경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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