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시는 낙동강 유역의 으뜸가는 수변도시다. 봉화에서 흘러온 낙동강은 안동호를 지나 동서로 안동시를 가로지른다. 서울의 한강처럼 낙동강을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가 안동이다. 낙동강이 도심 한복판을 흐르는 이러한 수변도시를 경북에서는 보기 드물다. 안동시를 포함해 구미시와 왜관읍뿐이다. 안동은 사람들이 강을 통해 문화를 꽃피울 수 있는 좋은 여건을 지녔다. 그래서 안동은 경북의 어떤 지역보다 강 주변의 역사문화가 풍부하다. 앞으로 강 중심의 관광도시로 발전할 가능성도 그만큼 크다.
◆사람, 강에 살다
안동 풍산읍 마애리 낙동강은 마을 굽이를 돌아 망천(輞川)절벽 앞을 흐른다. 강 주변에는 백사장이 펼쳐져 있고 강 언덕에는 소나무 숲이 울창하다. 2007년 4월 이곳 강변에서 돌무더기가 나왔다. '마애솔숲문화공원'을 가꾸기 위해 매장문화재 발굴조사를 벌이던 중이었다. 주먹도끼, 찌르개 등 다듬거나 갈아서 만든 구석기 유물들이 다양하게 출토됐다. 기원전 3만∼4만 년쯤 후기 구석기시대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 371점이었다. 이후 발굴을 거쳐 마애선사유적전시관이 2009년 11월에 문을 열었다.
땅 아래 잠자던 구석기 유물들을 세상에 나오게 한 마애솔숲 문화공원 조성사업은 안동시가 2005년부터 펼쳐온 '낙동강 70리 생태환경 조성사업' 가운데 하나였다. 안동시는 일찌감치 낙동강 유역의 생태자원을 역사문화와 연결하는 관광자원화를 꾀했다. 이를 통해 '세계적인 리버투어리즘 도시'로의 도약을 꿈꾸었다.
안동시의 낙동강 조성 사업은 2008년 4대강 살리기 선도사업으로 채택됐다. 지난해 12월엔 3년간의 공사 끝에 '안동2지구 생태하천 조성'이 마무리되면서 용상동 법흥교∼옥동 안동대교 구간(4.07㎞)이 시민휴식공간을 돌아왔다. 제방을 보강하고 자전거길, 산책로, 생태학습장, 실개천, 강수욕장, 수목식재 등 생태공간으로 강은 다시 태어났다. 강변에는 안동 문화예술의 전당, 음악분수, 탈춤공원 등 문화공간이 연결됐다.
낙동강살리기 안동지역협의회 위원인 권기창 경북도립대학 IT특약계열 교수는 "홍수예방을 위한 기존의 둔치는 높고 경사가 가팔라 강과 인간을 단절시켰다"며 "이제 새롭게 조성된 낙동강 생태하천은 사람들을 강으로 끌어들인다. 둔치를 여러 층으로 만들어 걷거나 자전거를 탈 수 있게 했다. 경사도 완만해져 제방에 앉아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낙동강, 안동문화의 탯줄
"어제의 햇볕으로 오늘이 익는/ 여기는 안동/ 과거로서 현재를 대접하는 곳."(류안진 시인의 '안동' 중에서)
안동은 과거 전통문화를 찬란하게 꽃피웠고 그 열매가 현재까지 익어가는 고장이다. 무엇보다 안동은 낙동강 유역 도시 가운데 가장 풍부한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다. '강변 문화관광 도시'로의 비상을 꿈꾸는 원동력은 바로 낙동강이다.
'안동의 힘'인 낙동강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봉화에서 흘러온 물이 안동호에 이르는 상류권(도산면, 와룡면, 예안면), 안동호 수문에서 안동대교까지의 직류 구간인 시내권, 안동대교에서 하회마을을 지나 구담습지까지 이어지는 하류권(풍산읍, 남후면, 풍천면)이다.
상류권은 퇴계로 대표되는 유교문화를 상징한다. 도산서원은 조선 최고의 유학자였던 퇴계가 후학양성에 힘썼던 '성리학의 성지'였다. 서원 앞 시사단이 이를 증명한다. 1792년 3월 정조는 퇴계의 학덕을 기려 도산서원에서 과거를 보게 했다. 응시자가 3천 명이 넘어 시험장소를 강변 백사장으로 옮겼다. 이를 기념해 비(碑)를 세웠는데 이것이 시사단이다. 퇴계가 태어나고 묻힌 태실과 묘소, 종부가 손님을 맞는 퇴계종택, 제자 금난수가 지은 고산정, 퇴계의 14대 후손으로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시인인 이육사의 묘소와 문학관(도산면 원천리)이 있다.
시내권에는 고려 왕실과 관련된 이야기가 남아 있다. 송현동의 합전교는 930년 왕건과 견훤이 격전을 벌였던 병산전투 현장이다. 당시 안동지역 세도가였던 김선평, 권행, 장길은 왕건을 도와 견훤을 물리쳤다. 고려 개국 후 이들의 공을 기리기 위해 사당인 태사묘(북문동)를 지었다. 1361년에는 공민왕이 홍건적의 침입을 피해 안동으로 내려왔다. 그때 공민왕이 자주 찾았던 정하동의 영호루(映湖樓)에는 아직도 친필 현판이 남아있다.
하류권의 명소는 단연 '하회마을'이다. 1999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다녀가면서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탔다. 이후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안동을 대표하는 관광명소가 됐다. 강이 곡선을 그리며 감싸는 하회는 풍산 류씨가 600여 년간 살아온 동성마을이다. 임진왜란을 기록한 징비록의 저자 서애 류성룡의 고향이다. 마을에는 서민들의 '하회별신굿탈놀이'와 선비들의 '선유줄불놀이'가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다. 하회에서 3㎞ 남짓 떨어진 낙동강변에 고미술연구가들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원으로 꼽은 병산서원이 있다.
◆'전통과 교감'하는 강의 미래
안동시의 낙동강 생태환경 조성사업은 이제 마무리 단계에 있다. 백운정 솔숲, 월영공원, 안동2지구 생태하천, 검암습지생태공원, 마애솔숲문화공원, 송천바이오벨트, 하회관광단지 등의 조성이 완료되면서 생태환경이 개선됐다.
하지만 안동에는 방치되거나 원형이 변형된 문화유산들이 있다. 국보이자 현존하는 우리나라 전탑 중 가장 높은 법흥동 7층 전탑은 바로 옆을 지나는 기차의 진동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 안동역 한쪽의 동부동 5층 전탑(보물 제56호) 역시 구조물과 인근 건물에 가려 방치돼 있다. 도산서원 앞 시사단은 1976년 안동댐이 들어서면서 축대를 쌓아 재건축되면서 섬처럼 고립됐다. 도산면 원천리의 이육사 생가는 안동시 태화동으로 옮겨지면서 건물을 좁게 붙여놓아 고택의 기품을 잃었다.
낙동강 생태복원을 매듭짓고 문화관광 수변도시로 도약하려는 안동은 미국의 샌안토니오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30년대 건축과 디자인을 공부한 로버트 허그먼은 샌안토니오강을 도심의 미적 자산으로 활용하자는 구상을 내놓았다. 이후 남북을 가로지르는 강을 따라 조성된 수로와 산책로 '리버워크'(Riverwalk)는 샌안토니오의 명소로 손꼽히게 됐다. 특히 시는 '전통과의 교감'을 목표로 세우고 역사유적을 리버워크와 연결해 관광자원화했다. 4개의 '미션포털'로 구성된 '역사보존구간'을 설정해 물길과 이었다. 샌안토니오에는 알라모 성당 등 19세기 텍사스 독립전쟁 때 기지 역할을 한 선교지 5곳 모두가 관광지로 조성돼 있다. 이 중 4곳을 리버워크와 연결해 관광자원의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김준한 안동대 한국문화산업전문대학원 교수는 "낙동강 살리기 등 기반공사와 함께 하회마을과 도산서원 등 안동의 전통문화자원과 결합한 스토리 콘텐츠 개발이 중요한 시점이 왔다"며 "복원된 생태 강과 역사전통이 담긴 문화유적들을 바탕으로 공연 등 문화자원을 세계화한다면 안동은 수변관광도시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 서광호기자 koz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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