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은 집 장맛도 쓰다'는 속담이 있다. 집안에 말이 많으면 살림살이가 엉망이 될 수 있다는 뜻인데 허투루 쓴 말들이 화근이 된다는 소리다. '말을 적게 하면 고치기 쉽다'(Little said soon amended.)는 영어 속담도 같은 맥락이다. 말은 기본적으로 자기표현과 소통의 도구다. 하지만 말을 잘못 쓰거나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다 되레 반목과 갈등을 부추기고 단절의 빌미를 제공한다. 감정에 치우쳐 함부로 쏟아낸 말이 그런 결과를 초래하기 쉽다.
논어는 "말은 위중하니 쉽게 내뱉을 수 있는 말은 없다. 모든 말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말할 때와 장소를 잘 아는 사람이 지혜롭다고 했다. 말할 때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이어야 한다는 소리다. 논어의 '용이무례즉란'(勇而無禮則亂'용감하나 예의를 모르면 난폭하게 된다)도 이를 경계하라는 가르침이다. 앞뒤 가리지 않고 말하는 용기는 오만이자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한다.
말은 무섭다. 한번 뱉은 말은 어떤 수로든 거둬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말이 고마우면 비지 사러 갔다 두부 사온다'는 속담처럼 적절한 말과 표현에는 밑천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잘못 쓴 말은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힐 뿐 아니라 결국 자신에게 되돌아와 무거운 말 빚이 되기 마련이다. 방송 이슈토론에서 똑 부러지게 제 주장을 펴 '고대녀' '개념녀'로 회자됐던 김지윤 씨가 하루아침에 '무개념녀' '해적녀'가 됐다. 트위터에 제주 해군기지를 '해적기지'로 표현하는 바람에 여론의 질타를 받고 통합진보당 청년비례대표 경선에서도 떨어졌다. 게다가 해군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고소돼 검찰 조사를 받는 처지로 전락했다.
차라리 말실수이거나 넋두리였다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해적은 정부와 해군 수뇌부를 풍자한 것이지 해군 장병을 지칭한 것은 아니다"면서 '해적기지' 표현에 잘못이 없으며 철회할 의사도 없다고 했다. 이런 소동을 보고도 트위터 팔로어가 38만 명이 넘는다는 작가 공지영 씨는 "국민을 마구잡이로 패는 해군은 해적이 맞다"고 거들고 나섰다. 과연 국민과 해군이 김 씨와 공 씨의 말을 왜곡하고 마녀사냥을 하고 있는 것인가.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제주 4'3사건을 '민중 반란' '공산주의자들이 주도한 폭동'이라고 논문에서 표현한 이영조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나 '독립군은 소규모 테러단체'라고 주장한 박상일 한국벤처기업협회 부회장이 새누리당 공천 취소라는 결과를 자초한 것도 마찬가지다. 소신껏 말하는 용기는 그렇다 쳐도 결과적으로는 오만함이다. 다수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말이나 표현만큼 가치 없는 것도 없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공론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것은 나라의 좋은 기운이 넘치는 것'(公論者有國之元氣)이라고 보았다. 국가 대소사를 놓고 조정에 공론을 일으켜 토론하는 경연(經筵) 제도까지 만들어 이를 장려했다. 왕조가 새로 열리면서 신료들이 적극 자기 의견을 개진해 보다 좋은 제도와 규칙을 만들어가는 분위기를 조성한 것이다. 자연히 갑론을박이 뒤따랐고 조율과 타협, 합의의 정신이 왕조의 기틀을 잡아나가는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왕조시대의 소통 방식이다. 이런 방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국가 정책에 있어 개인이나 단체 등 국민 누구나 제 의견을 내고 활발한 토론과 합의 과정을 거쳐 정책 방향을 정할 수 있는 것이다. 경연이 조선의 방식이었다면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SNS는 현대의 새로운 공론의 장이자 가장 직접적인 소통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다.
하지만 공론의 틀이 어떠하든 이슈에 대해 자신의 생각만 고집하고 자기 신념과 가치를 과대평가할 경우 부작용은 커질 수밖에 없다. '해적기지'나 '민중 반란' 같은 말과 표현은 공론과는 거리가 멀다. 이는 개인의 편협한 생각일 뿐 가치가 아니다. 장맛만 쓰게 만드는 고집이자 공론(空論)일 뿐이다. 신뢰를 얻기 어렵고 의미 부여하기도 힘든 말과 표현에는 반드시 비난과 대가가 뒤따른다. 세상이 아무리 어리숙하다 하더라도 이치에 닿지 않는 가치는 합리적인 가치와 절차가 아님을 안다.
가루는 칠수록 고와지지만 말은 할수록 거칠어진다고 했다. 이것이 세상 이치다. 아집과 가치를 구분하지 못하고 자기 것과 다른 이의 것을 엄밀히 비교해 따져보지 못한다면 결과는 뻔하다. 누구를 탓하겠는가.
徐琮澈/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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