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라는 옛이야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이야기의 구성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쥐들의 등쌀에 괴로워하자 어디선가 홀연 낯선 사나이가 나타나 피리를 불어 쥐들을 몰고 가 강물에 빠져 죽게 한다. 하지만 시장과 의원들이 사나이에게 약속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자 사나이는 또다시 피리를 꺼내 분다. 그러자 온 동네 아이들이 사내를 따라가고 이윽고 마을에서 사라져버린다. 그들의 부모들은 다시는 사랑하는 아이들을 볼 수 없었고, 그 도시는 아이들이 사라진 날을 기준으로 날짜를 세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아이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피리 부는 사나이는 대체 누구일까?
이 이야기는 유럽의 하멜른이라는 도시에서 전해지는 오래된 전설로, 중세사 연구자인 아베 긴야는 우연히 도서관에서 관련 자료를 접하고 관심을 갖게 된다. 마침내 그는 다양한 연구자들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자신의 의견을 정리하여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를 펴내게 되었다. 그는 '피리 부는 사나이'라는 전설이 성립하게 된 당시 유럽의 역사적 배경과 민중들의 생활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후 전설이 지식층과 성직자들의 이해에 의해 왜곡되고 변모되어 가는 과정을 살펴본다.
아이들이 왜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갔으며 이후 어떻게 되었을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이 이야기를 시로 써서 세상에 널리 알린 영국의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은 멀리 트란실바니아 지방에 낯선 풍속과 낯선 옷차림을 한 이방인들이 살고 있으며 이방인 무리의 옛 선조들은 브라운슈바이크의 하멜른이라는 곳에서 살았는데 오래전 한꺼번에 속임수에 빠져 이 지방으로 왔다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맺는다. 이 해석은 그 자신 동유럽으로 이주해온 조상을 가진 반이라는 연구자에 의해 주장되었으며, 당시 서유럽은 갑작스러운 인구 증가 때문에 동유럽으로 대규모 이주를 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어린이 십자군 참가나 무도 행진 끝에 사고로 아이들이 희생되었다는 해석도 있다. 이는 당시 울적한 일상생활에서 잠시 해방을 맛보는 축제의 소동 속에서 어린이도 어른 이상의 흥분을 맛보며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위험한 행동을 할 수 있었다고 본 데서 나온 해석이다. 흑사병과 같은 중세시대의 잦은 역병으로 희생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피리 부는 사나이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다양한 해석이 있다. 알록달록한 색 옷을 입은 것으로 보아 식민지 개척을 독려한 귀족이라고 보기도 하고 유랑 악사나 쥐 사냥꾼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베 긴야는 어린이 130명의 실종과 유랑 악사는 거의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본다. 그들이 관련되었다면 그것은 축제의 시공간 속에서였으며,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 사건이 후일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로 알려지게 된 것은 유랑 악사가 사회적으로 소외된 존재였고, 그들을 차별하고 악행의 상징으로 여긴 사람들과 학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랑 악사는 그들이 품고 있는 정체 모를 공포의 배출구이자 그 공포를 대상화하고 전가할 수 있는 존재로 설정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어떤 연구자는 '피리 부는 사나이'를 악마로 바꾼 것은 신학자나 성직자의 작위였다고 본다.
많은 전설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쥐 사냥꾼'의 복수라는 모티프는 '쥐 사냥꾼'이 앞에서 말한 유랑 악사와 마찬가지로 그 땅에 정착하지 않고 떠도는 존재로서 공동체의 질서에서 벗어난 피차별민이었고, 그들을 대하는 일반인의 태도가 차별적이었음을 나타낸다.
정치와 종교상의 이념 투쟁에서 서민과 어린이들이 늘 희생자가 되는 현실이 있었기에, 이 전설은 '쥐 사냥꾼의 복수 전설'로 바뀌어 한 지역의 이야기에서 세계적인 보편성을 가진 이야기로 성장해나갈 수 있었다. 옛이야기를 둘러싸고 당대의 역사적 사실과 민중 생활상을 분석해가는 치밀한 논리 전개와 사실 자체의 흥미로움 때문에 먼 유럽의 오래전 이야기임에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수성구립 용학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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