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구활의 고향의 맛] 쾌락과 입맛

어시장서 산 석화에 갖은 양념 조물조물…아! 그 맛

굴은 최음제(aphrodisiac) 성분이 강한 스태미너식이다. 굴이 정력에 좋은 이유는 바로 아연 때문이다. 아연은 남성 호르몬의 분비와 정자 생성을 촉진시키는 영양소로 셀레늄과 함께 '성 미네랄'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탈리아의 성웅(性雄) 카사노바는 매일 아침 굴을 50개씩 먹었다고 하며 돈 주앙도 굴을 즐겨 먹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굴을 비롯하여 조개나 생선까지도 겨울이 제철이다. 여름철엔 조개들의 살이 무른데다 기온이 높아 변질될 위험이 높다. 1599년 버틀러가 쓴 '식사 지침서'(Diets dry dinner)에는 "R자가 들어가지 않는 달인 5월(may) 6월(june) 7월(july) 8월(august)에는 굴을 먹지 말라"고 씌어 있다.

이 시기에 굴의 성분 중 유독물질이 확인되었거나 이를 입증할 과학적 근거는 없다. 그러나 여름철은 조개들의 산란기로 암수 모두가 방란 방정으로 인해 몸이 허약해져 있는 상태여서 맛도 다소 떨어진다. 게다가 이 시기는 수온이 올라 조개가 상하기 쉽고 따라서 비브리오 균의 창궐로 식중독을 일으킬 우려가 높다. 일본에서도 예부터 '벚꽃이 피면 굴을 먹지 말라'는 말이 전해 내려오는 것만 봐도 여름 조개의 독성을 무시해선 안 된다.

지구 면적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바다 속에는 엄청난 종류의 조개가 살고 있다. 눈곱처럼 작은 것도 있고 사람의 다리를 물고 늘어지면 죽을 때가지 입을 열지 않는 대형 살인 조개도 있다. 먹을 수 있는 조개가 대다수지만 먹을 수 없는 것도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조개류는 전복을 필두로 키조개, 피조개, 굴, 꼬막, 홍합, 바지락, 새조개, 모시조개 등 불과 몇 가지뿐이다. 우리가 흔히 "무얼 좀 안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오만이 빚은 편견임을 알아야 한다.

나는 조개 중에서 갯가 사람들이 석화(石花)라고 부르는 야생 굴을 좋아한다. 석화 중에서도 껍데기 째 숯불에 올려 구워먹는 사이즈가 조금 큰 것보다 어리굴젓을 담그는 낱알이 작은 것을 더 좋아한다. 그렇다고 큰 것을 먹지 않는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바닷가 어시장 난전에서 한 그릇에 1만5천원쯤 하는 석화를 갖은 양념에 참기름을 듬뿍 넣은 조선간장으로 버무려 놓으면 다른 안주가 필요 없다. 한 잔 술에 석화 반 숟갈씩만 먹어도 소주 몇 병은 금세 날아간다.

꽤 오래 전 일이다. 충남 서산 쪽으로 친구들과 꿩 사냥을 갔다가 석화를 손질하는 동네 아낙들을 만나 난생 처음으로 죽어도 잊지 못할 그 맛을 보았다. 맘에 드는 식당을 만나지 못해 아침밥도 굶은 채 바닷가 풀밭을 한 바퀴 돌아오는데 "석화 맛 좀 보세요"하고 한 아낙이 말을 걸어 왔다. 밥뚜껑에 담아 주는 석화 맛은 그야말로 예사 맛이 아니었다. "밥에 비벼 먹으면 좋겠는데"라고 혼잣말을 했더니 "아침 먹고 남은 밥 좀 드릴까요"라고 한다. 그날 먹었던 '식은 밥 석화 비빔'은 얼마나 맛이 있던지 다시 한 번 맛보기를 소원하고 있지만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고 있다.

또 한번은 위도에서 겪었던 일이다. 친구 몇과 격포에서 배를 타고 위도로 들어가 트레킹 형식으로 섬 한 바퀴를 돌았다. 선착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해넘이'란 민박집에 방을 정했다. 저녁 먹기는 이른 시각이어서 바닷가를 어정거리다 썰물로 드러난 갯바닥에서 바지락을 비롯하여 온갖 조개를 잡고 있는 아낙들을 만났다. 돈 만원어치의 갯것들을 사고 보니 우리도 능히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것은 기름내가 나서 못 먹어요." 엎드려 작업을 한참 하고 있는데 아낙이 한마디하고 지나간다. 눈으로 보니 갯바닥이 깨끗한데다 몇 마리 잡은 걸 버리자니 아까워 그걸 갖고 그냥 돌아왔다. 그게 화근이었다. 조개를 잡아 직접 삶았는데 먹으면 탈나는 것이 하필 내 손에 쥐어질 줄이야. 먹다가 뱉어버렸으면 아무 일이 없었을 텐데, 그날 밤 나는 화장실 변기를 끌어안고 밤새도록 씨름을 해야 했다.

나는 요즘도 서산 태안 쪽으로 갈 기회가 있으면 반드시 전통시장에 들른다. 주 목적이 정말 맛있는 석화 한 사발을 사기 위해서다. 내가 석화를 좋아하는 까닭은 카사노바의 쾌락이 목적이 아니라 순전히 혀끝에 달린 입맛 때문이란 걸 나는 안다.

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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