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산사랑 산사람] 고흥 거금도

거금대교 개통 후 생긴 명품코스…그림같은 다도해 풍경에 흠뻑

봄이 다가온다. 다도해의 수많은 섬들 사이로 따스한 봄기운이 벌써 상륙을 서두르고 있다. 유난히 추웠던 지난겨울 냉기를 딛고 봄을 기다리는 섬이 하나 있다. 섬과 섬 사이에 긴 다리를 놓고서. 우리나라에서 10번째로 큰 섬이자 비운의 섬 소록도 아래에 위치한 거금도다. 섬의 이력이 다양하다. 조선시대에는 절이도(折爾島)로 불리며 강진군에 편입되었다가 1897년 돌산군 금산면에 속했다. 그러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현재의 전남 고흥군 금산면이 되었다. 큰 금맥이 있어 거금도(居金島), 거억금도(居億金島)라고도 불린다.

◆소록도~거금도 대교 개통 후 관광명소=지난해 12월 16일 섬에 획기적인 일이 생겼다. 고흥군 소록도와 거금도를 연결하는 거금대교가 놓인 것. 2002년부터 시작한 이 공사는 9년 동안 2천732억원이 투입되었다. 총 길이 2천28m에 너비는 12.5m. 높이 167.5m의 다이아몬드 모양의 주탑(柱塔) 2개와 강철 케이블선이 교량 상판을 붙들고 있는 1천116m 사장교다. 접속교까지 포함하면 2㎞가 넘는다. 다리의 위층은 차량이 통행하고 아래층(폭 4m)은 자전거와 사람이 다닐 수 있게 설계되었다. 국내 해상 교량 가운데 첫 복층 구조로 된 다리다.

최근에 산행지로 거금도 적대봉(積台峰'592.2m)이 대세다. 섬 한가운데에 우뚝 솟은 봉우리는 마치 바다에 떠 있는 고래등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섬 산치고는 높이가 결코 만만치 않다. 고흥군에서는 팔영산(608.6m) 다음으로 높다. 펑퍼짐한 산세와 달리 전망도 매우 뛰어나다. 예전에는 선박의 접근이 용이한 '신평리 동정마을'이 등산 들머리였다. 그러나 이제는 변했다. 산 주변을 따라 다양한 등산로가 개척되었기 때문이다. 등산객들이 주로 날머리로 이용하던 오천리 거석마을을 들머리로 잡아 등산에 나섰다. 주말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몰린다기에 호젓하게 산을 오르고 싶어서였다.

내동 삼거리 우측에 '적대봉 등산로 5.4㎞'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차를 정차하고 도로를 횡단해 250여m 정도 임도를 따르니 산 입구에 무덤이 보인다. 우측으로 등산로가 연결된다. 능선 길이 처음부터 가파르다. 근래에 많은 관광객들이 다녀갔는지 예전보다 등산로가 훨씬 넓어지고 군데군데 파여 있다.

◆그림처럼 펼쳐진 기차바위 암릉 짜릿=한참을 진행하니 전방에 돌탑이 보이고 사방이 환해진다. 돌아보니 탁 트인 바다가 보인다. 흐린 날씨에도 해변과 어우러진 어촌마을의 풍경이 참 아름답다. 올라야 할 봉우리 아래로 하얀 이빨처럼 드러난 암벽과 주능선 위의 기차바위 암릉이 그림처럼 멋지다. 바위 위를 걷고 있는 산객들의 모습이 강렬하다. 사진을 찍는데 피사체가 눈 속으로 빨려드는 느낌이다.

등산을 시작하고부터 내내 눈길을 끌던 전망바위에 도착한다. 로프와 안전시설물이 설치된 경사진 반석 위에서 숨을 고른다. 발밑에 펼쳐진 조망을 즐기며 바다 기운을 들이마신다. 또 다른 전망 터 483봉에 오르니 이번엔 서쪽으로 숨겨진 해안의 비경이 모습을 드러낸다. 들쭉날쭉한 해안선을 배경으로 거대한 곡선처럼 펼쳐진 익금해수욕장과 장금해수욕장이 그림처럼 다가온다.

기차바위 능선 길은 좌우가 절벽이라 더욱 스릴이 넘친다. 535봉을 지나 연결되는 암릉과 468봉, 528봉은 적대봉 전체 등산로 중 경치가 가장 빼어난 곳이다. 아기자기한 등산로를 따라 좌우 전면으로 용두봉(417.3m)과 정상 적대봉이 보인다.

528봉을 넘으면 마당목재다. 산행을 시작한 지 약 2시간여 만이다. 평평한 삼거리로 적대봉 정상까지는 1㎞, 파성재까지는 1.6㎞, 등산을 시작한 오천리는 4.4㎞라 표기되어 있다. 거금대교가 완공되고 나서 전국에서 수많은 등산객들이 몰리자 막걸리와 동동주를 파는 간이매점까지 생겼다. 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즐기며 북적거리는 통에 중식을 미루고 내친김에 적대봉까지 오르기로 한다.

적대봉에서 내려오는 등산객들이 연이어 꼬리를 문다. 마당목재에서 적대봉까지는 20여 분 소요된다. 정상에는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다. 봉수대는 조선시대 때부터 왜적의 침입이나 비상사태 시 연기를 피워 위기를 알리던 수단이다. 둘레가 약 34m, 직경이 약 7m 규모다. 봉수대에 오르니 사면팔방이 모두 발아래다. 바다 건너 북쪽으로 고흥반도의 천등산 마복산이 보이고 서쪽으로 완도를 비롯한 섬들과 천관산이 마주 보인다.

남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거문도가 시야를 간질이고, 동쪽으로는 여수 일원의 바다와 섬들이 올망졸망한 모양으로 한눈에 들어온다. 날씨가 선명하고 맑았더라면 멀리 제주도까지 볼 수 있었을 텐데 오늘은 그러지 못해 아쉽다.

저 멀리 소록도와 주변 섬들의 경치도 눈에 들어온다. 소록도는 섬의 해안선이 작은 사슴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1916년 한센병 환자들을 수용하면서 많은 아픔과 상처도 같이 잉태된 곳이다. 최근 청정한 환경과 역사적 가치가 널리 알려지면서 관광명소로 부상하고 있다.

정상에서 내려와 작은 기차바위를 통과해 봉우리 하나를 넘는다. 능선에서는 좌측 저 멀리 거금대교가 선명하고 산자락 아래에 크고 작은 마을들이 아담하다. 30분 정도 내려오니 신평과 동정으로 갈라지는 삼거리다.

주능선을 버리고 좌측으로 하산한다. 한참 내려서니 포장된 임도가 나타난다. 임도를 횡단해 계곡 옆으로 잠시 내려서니 동정마을과 지방도로다. 마을 입구에는 '동정마을' '금산정사' 두 표지석이 나란히 서있다.

◆녹동항 하산주 자리서 소록도 주민 애환 되새겨=오천리 마을을 출발해 마당목재를 거쳐 적대봉을 오른 후 동정마을까지 하산하는 코스의 등산거리는 7.4㎞, 약 4시간 전후가 소요된다. 좀 더 짧은 코스를 원한다면 파성재에서 시작해 정상을 오른 후 오천리나 동정마을로 하산하면 된다. 소요시간은 약 3시간 정도.

시간 여유가 있어 돌아오는 여정에 녹동항에 들렀다. 녹동항은 고흥반도 남서쪽에 있는 국가지정 어항이다. 소록도와 거문도, 백도, 제주도를 여행하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해상교통의 중심지다. 인근 섬에서 생산되는 활어와 김, 미역, 다시마, 멸치 등 해산물의 집산지이기도 하다.

소록대교와 소록도가 마주 보이는 녹동항에서 산우들과 조촐한 하산주 자리를 만들었다. 산객들과 유쾌한 대화로 좌중 분위기는 훈훈해졌다. 소주 한 잔에 회 한 점을 입에 넣는다. 바다 앞 소록도에 시선이 미친다. 물결을 따라 슬픔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한하운의 가슴 절절한 시 '전라도 길'(소록도 가는 길)이 생각나서다.

글'사진 지홍석(수필가'산정산악회장)

san32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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