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사이로 뛰어다니던 청설모 녀석이 꼼짝 않고 가만히 있다. 지쳤던 것일까? 하긴 녀석도 쉼표가 있어야겠지….
1970년대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좋은 선생님들로부터 마음의 양식이랄까 정신적으로 갈구하던 것들을 배우고 얻었다.
칠판에 또박또박 써 주시면 우리는 베껴 적고, 되뇌며 익혔다. 타임 이즈 머니 (Time is money)를 무지 느리게(?) 외웠다.
DNA를 의심하며 여드름 고민할 때 아들 책상에 서중미인(書中美人)을 크게 써 붙여 주셨다. 마치 아버지께서 내 마음을 다 아시는 듯.
그러면서 사춘기 폭군 내 마음은 근육이 붙어 정신수양이 되고 튼튼해져 갔다. 검객(성형외과의사)이 된 후 한 수(?)라도 배우려 유명한 일본 검객을 찾아간 적이 있다. 제자를 보내 어딜 가고 싶냐길래, 우에노 일본역사박물을 보고 왔다.
다음날 도쿄의 유명 화우(和牛'소고기)집에서 특별한 환영식이 열렸다.
어제 전자제품 구입하러 가지 않고 일본 역사 탐방한 것에 감동했다 하신다. 몇 가지 물었는데 더 점수 땄던 모양이다.
외국 손님들이 도쿄를 방문하면 늘 가는 곳이 전자제품상가라고 하는데 내가 처음으로 안 갔단다.
그도 그럴 것이 일제가 세계적으로 알아주던 시절이니 일본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은 흔히 전자제품을 사가던 시절이었다.
내가 방문했던 노검객 옆방엔 당시 두개 안면 양악 분야 당대 최고 실력 검객이 칼 갈고 있었다. 근접하기 어려울 정도로 카리스마맨이었던 모양인데, 나는 원래 노검객의 현명함을 얻고자 갔기 때문에 그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이 실력자는 괘씸했던지 나를 불렀다. 왜 자기 수술방은 참관 않느냐고, 서울 검객도 지금 자기방에 있는데, 넌 뭐하냐, 가르쳐줄테니 와봐라 식으로 말이다.
다음날 수술방에서 일이 벌어졌다. 자기 수술법 어떻게 생각하냐고. 난 생각이 다르다고 했다.
수술톱으로 뼈를 자르면 끝이 깎인다. 그래서 완벽 맞음이 어려운데 뼈끼리 철사로 묶는 것과 스크류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당신과는 의견이 다르다. 수술 직후라도 씹을 수 있고 먹어야 낫지, 죽도 먹기 힘든 4주간 철사 고정은 꺼려진다 했다.(그 당시 철사 고정을 주도하고 있었다)
아이고, 왜 물어 가지고…. 잠시 침묵이 흐르고, 마스크 안에서 고약한 검객의 얼굴이 붉어지는 게 보였다. 그날 저녁 모든 과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또 묻길래, 한번 뺀 칼인데 싶어 아예 선을 그었다. 환자 불쌍해서 못 그런다고 했다. 그날 저녁 검객과 난 한국식 양구이를 먹었다. 레지던트들이 눈 똥그래졌다. 이런 일은 처음이란다. 우린 평생 우의를 다지게 되었고, 다음날 특별강의하는 영광을 누렸다. 경상도 문디 깡다구가 세련되면 감성이 되고 이성을 지배한다. 순식간에 못된(?) 류자브로 다니노 교수는 내 멘토가 되었다.
이경호 성형외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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