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건축대전의 참관을 위해 초겨울 새벽 열차 여행을 감내하고도, 서울역에서 두 시간여의 여정이 더 필요했던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방문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 원시적이다. 그때의 경험 때문인지 미술관 방문엔 으레 시간과 정열을 어지간히 들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다가가면서 보이는, 산세의 흐름에 실린 과천 현대미술관의 외부 공간과 건축은, 산속에 지어진 우리 전통건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단'(段)의 위계나 순차적인 접근 방식을 불현듯 닮아있고, 외형의 틀 또한 드러남이 최소화되었으나 성벽의 돌 쌓기처럼 왠지 무겁고 배타적으로 보인다. 외부 공간의 구성과 미술관으로의 접근 방식에선 영주 부석사를, 건축물의 디자인은 물성과 텍스처 등을 수원 화성(華城)에서 그 아이디어를 얻어 지어졌다고 하니, 어마어마한 규모를 생각하면 그 건축적 성취는 대단한 게 틀림없다. 그리고 미술품을 관람하는 일차적인 목적 외에도 도심에서는 쉬이 누릴 수 없는 자연 속의 푸른 여유로움을 덤으로 얻을 수 있다는 측면에선 꽤나 긍정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 미술관의 만 가지 대단함에도 불구하고 딱 두 번의 방문으로 자연스럽게 인연은 끝이 났으며, 그중 한 번도 놀이동산 방문이 주목적이었음을 부끄럽게도 밝힌다.
건축은 기억을 담보한 시간이 누적된 장소 속에서 새로운 '영역'을 설정하고, 그 주변의 또 다른 영역과의 '관계'를 그 시대 이념을 담아 조율하는 것이며, 그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재생산하는 작업이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건축은 건축, 그 자체로 최종 목표가 되기보다, 건축을 수단으로 장소와 시간 속에서 그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공공장소, 공공공간으로 불리게 되는 미술관, 도서관 같은 공공건축은 특별히 시민들에게 문화적 경험을 보태고 문화적 소양을 갖추게 한다는 점에서 입지 선정 시 접근성과 이용의 편의성이 강조되어야 한다. 건축물의 입지는 이용의 편의성과 활용률의 차원에서 때때로 건축의 규모나 형태보다도 훨씬 중요하다.
업무에 시달려 영화나 전시회 한 번 변변히 볼 수 없는 직장인이나, 입시에 매달린 청소년들도 시간에 쫓기는 문화 소외 계층이다. 이들에게 다양한 문화 시설에 대한 접촉 기회를 늘려주는 것은 어쩌면 이상적인 사회로 가는 지름길일 수도 있겠다. 앞산순환도로를 경계로, 청소년들의 접근이 원천적으로 어려운 곳에 위치한 청소년 시설들과 도서관을 보면 누구를 위한, 무엇을 목적으로 한 건축인지 가끔씩 의아하다. 물론 부지 확보의 어려움과 경제적인 문제를 무시할 수 없지만, 최소한의 규모라도 시민들의 일상 속으로 파고들 때 공공건축 본연의 목적이 달성된다. 시민들의 일상과 격리된 장소에서 문화시설로 기능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은연중에 끼어든 문화가 시민의 일상을 혁신하고 또 그 일상 속에서 담론되길 바란다.
일반 시민의 보편적 관념 속에서 미술관은 어떤 곳이며 어떤 맥락으로 취급되어질까? 동물원, 체육관, 놀이동산, 대공원 등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되어도 되는 것일까?
우리 지역에도 지난해 오월 숙원의 대구미술관이 개관되었다. 누구보다도 관심을 가졌지만 최근에야 겨우 방문을 하였다. 방대한 크기의 부지에 어떻게 채울까 싶은 규모, 거기에 도로망의 구축까지 실로 엄청난 프로젝트이다. 하지만 접근성 탓인지 벌써부터 저조한 시민들의 방문과 투자비에 대한 금융 비용, 유지 관리 비용 등으로 인한 적자에 걱정들이다. 대공원, 대구스타디움 등 주변 인프라가 구축되면 열악한 접근성은 다소 해결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지만, 과천 현대미술관을 사례로 보면 여전히 답답하다. 장소적 특수성에 걸맞은 기획과 홍보 등에 있어 전문적인 대처가 절실하며, 접근의 편의를 도울 특단의 대책이 시급하다. 그리고 미술관의 기본적 목적 달성을 위해 자칫 정체성과 전문성을 우선시켜 너무 어려워지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구태의연한 장르 구분, 경직된 전시 형식에 집착하다 훨씬 본질적인 목적을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에코 미술관, 이동하는 미술관 등 최근 변화된 능동적이고 참여적인 개념으로의 전환이 동시에 고려된다면 여전히 그 가능성은 열려 있다.
혹시 대구미술관 다녀오셨나요?
김홍근/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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