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원화 정책 '달러·위안화 상처' 속에 있다

화폐트라우마/다니엘 D. 엑케르트 지음/배진아 옮김/위츠 펴냄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초래한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금융시장에는 많은 돈이 풀렸다. 그 덕택인지 증시는 상승세에 있고, 환율도 안정적이다. 유럽의 재정위기가 서브프라임 사태의 여진처럼 경제를 흔들었지만 그래도 견딜 만 했다. 하지만 여전히 불길하다.

미국이 초강대국일 때는 미국의 경제상황만 눈여겨보면 세계경제의 흐름이 읽혔다. 추가변수라고는 국제유가 정도가 전부였다. 그러나 지금은 중국이 등장하고 유럽까지 개입됨에 따라 변수가 늘어났다. 미국 경제만 쫓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중국, 유럽, OPEC 국가 등 많은 변수를 함께 분석해야만 우리나라 경제를 예측하고 방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강대국의 통화정책 방향을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 이유는 각국마다 경제적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있고, 여기에 벗어난 행동은 가급적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강대국이 지닌 두려움의 정체를 파악한다면, 향후 그들이 어떤 경제정책을 펴나갈지 어떤 입장을 고수할지 예측할 수 있다. 그렇다면 대외 경제의존도가 높고 국력은 취약한 우리나라가 어떻게 난국을 헤쳐가야 할지도 자연스레 답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미국 달러의 트라우마는 대공황이다. 미국에서 대공황은 아메리칸 드림을 가장 크게 뒤흔들어놓은 사건이다. 한 나라의 트라우마는 그 나라의 행동양식을 규정한다. 2008년 미국 정부와 미국 발권은행이 경제위기에 맞서 내놓은 정책 역시 이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다. 미국에서 엄격한 긴축정책은 결코 다수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 따라서 향후 미국은 명백하게 인플레이션 정책을 취하게 될 수밖에 없다.

중국 위안화의 트라우마는 '화폐불안'이다. 해관관은호(海關官銀號), 북동-위안, 황금-위안, 은-위안, 만주국-위안, 멩치앙-위안, FRB-위안 또는 CRB-위안 등 명칭도 제각각인 화폐들은 중국의 분열과 불안을 가장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증언해 주고 있다. 빈번하게 발생한 화폐 혼란상을 보면서 중국은 그 어느 때보다 통제가 가능한 화폐를 염원하고 있다. 특히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를 경험하면서 위기의 순간이 오면 반드시 자국화폐를 방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교훈을 낙인처럼 새기고 있다. 따라서 중국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저평가된 위안을 고수하고, 이를 통해 수출 주도 국가경제를 통제할 것이다.

유로존 국가들은 두 번이나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을 견제하는 것이 제1 목적이다. 유로존을 이끄는 독일의 최대 트라우마는 세계대전 이후 경험한 하이퍼인플레이션이다. 전 세계를 통틀어 화이퍼인플레이션이 국민들의 집단적인 기억 속에 깊은 흔적을 남긴 나라는 독일뿐이다. 독일은 경제위기에 직면해서도 반드시 긴축정책을 펼칠 것이다.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에서도 독일은 강력한 긴축정책으로 유로존 전체의 금융건전화를 꾀하고 있다. 반면 프랑스는 무조건 독일을 견제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 때문에 독일이 PIIGS(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 국가들에게 지원금을 많이 지불하는 현 상태를 관망한다.

저자는 또 '금'이 가진 독특한 지위에도 주목한다. 금본위제가 이미 사라졌지만, 금과 달러의 시세가 반대로 움직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밀접한 관계가 있다. 화폐의 역사가 도로 현물화폐로 돌아가는 일은 없겠지만, 민간 차원에서는 금이 소중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현재 상황이다.

저자는 지정학적으로, 또 정치경제적으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곤란한 상황을 맞게 된 한국에게 "스위스의 정치력을 배우고, 홍콩과 싱가포르의 환율정책을 참조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중국은 필요할 땐 친밀감을 표시하지만 자국에 위협이 될 때는 가차 없이 잔인한 면모를 보인다. 한국의 대중정치가 중요한 이유이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으로 사라예보 사건(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태자 부부 암살사건'제1차 세계대전의 빌미가 됨)처럼 타이완이나 한국이 그 시발점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332쪽, 1만5천원. 석민기자 sukm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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