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눈물 젖은 찐빵

함민복 시인이 쓴 '눈물은 왜 짠가'라는 글이 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 댁에 머물도록 모시고 가던 중 설렁탕집으로 들어갔다. 한 댓 숟가락 설렁탕 국물을 떠먹었을 때 어머니가 주인에게 국물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조금 더 달라고 했다. 주인은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 주었고 어머니는 그가 안 보고 있다 싶은 순간 시인의 뚝배기에 국물을 부어주셨다. 그만 따르라고 자기 뚝배기를 어머니의 것에 부닥치는 툭 하는 소리에 서러움이 울컥 치받았다고 했다. 곁눈질로 그 모습을 보던 주인은 모른 척 깍두기 한 접시를 식탁에 놓고 갔고, 시인은 참고 있던 눈물을 흘리면서 '눈물은 왜 짠가'하고 중얼거렸다는 글이다.

외래를 보던 중 K가 검은 비닐봉지에 싼 도시락 같은 것을 내민다. 무엇이냐고 물으니 찐빵이라고 한다. 그것을 진료 책상 옆으로 밀어놓고 "경련은 하지 않느냐", "어디 불편한 점은 없느냐"고 묻자 없다고 말하면서 근무지를 노인복지회관으로 옮겼다고 말한다. "월급이 많으냐?"고 물으니 그저 빙긋 웃는다. "월급도 많지 않은데 무얼 사왔느냐"고 나무라면서 약 처방을 한다.

외래진료를 끝내니 한 전공의가 입원 환자에 대한 보고를 하려고 왔다. K가 준 비닐봉지에 싼 도시락을 꺼내 여니 주먹만 한 찐빵 여섯 개가 들어 있다. 하나를 입에 물고 나머지는 다른 전공의들과 같이 나눠 먹으라고 주면서 K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K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뇌동정맥기형이 파열돼 뇌출혈을 일으켰던 환자다. 한밤중에 불려 나와 수술을 하고 다음 날 출근해서 보니 아버지가 맹인이었다. 위중한 고비를 넘긴 K는 왼쪽 반신 마비가 생겼다. 열심히 재활치료를 하여 절뚝거리며 걷게 되자 퇴원하여 아버지가 K를 부축하고 K가 아버지를 안전한 길로 인도하며 외래에 오곤 했다. 그렇게 하면서 고등학교,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했다. 그때 K의 아버지가 '이놈이 머리 수술하고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한 놈입니다. 선생님이 수술을 잘해 주셔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면서 선글라스 밑으로 눈물을 흘렸다. 그러던 어느 날 K가 혼자 외래에 왔다. '아버지는?'하고 묻자 갑자기 눈가가 벌겋게 변하더니 '아버지는 제가 취직하고 얼마 안 돼서 돌아가셨어요. 저의 취직이 너무 기뻐서 술을 잡수시고 집으로 오시다가 교통사고로……'하면서 눈물을 글썽거렸다."

K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도중 또 마음이 울컥한다. 서둘러 전공의를 내보내고 빵을 한 입 더 베어 물으니 눈물인지 콧물인지 흘러 씹는 빵과 섞인다. '삶의 맛은 왜 그리 쓴가'하고 중얼거린다.

임만빈(계명대 동산의료원 신경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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