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현수의 시와 함께] 손금과 손등(박서영)

다방 옆자리 노인이 아가씨 손금을 봐 준다

중년의 아가씨

부끄럽게 두 손을 가지런히 탁자 위에 올리는데

손등에 파란 혈관이 굵직굵직하다

툭 튀어나온 혈관이 아버지에게 밥을 배달한다

엄마를 위해 기도하는 혈관은 늘 터질 듯 긴장상태다

오빠를 위해 돈을 번 혈관은 이제 콧노래를 부른다

가난한 가족을 가졌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끝없이 손을 갖다 바치는 것

다방 아가씨 손등엔

물푸레나무 가지들이 그녀의 재산처럼 뻗어 있다

농부와 어부와 노동자와 예술가

자연의 체온이 빚어낸 아름다운 손

손금의 운명이 진화하면 손등의 풍경이 된다

저기 보라, 손톱에 빨간 매니큐어 바르고

착하게 웃고 있는 주름살투성이 미스 김을.

강렬한 언어로 삶의 이면을 파헤치는 박서영 시인의 작품입니다. 다방에서 손금을 보여주는 미스 김의 이야기로 삶의 본질을 이야기하고 있네요. 제 삶이 궁금한 사람은 남에게 손금을 보여주고, 남의 삶에 끼어들고 싶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손금을 봐주고 싶어 하지요. 그러나 시인은 손등을 읽는 사람이야말로 제대로 보는 사람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이 시는 손금과 손등을 통해 정직하고 투명한 삶을 이야기하고 있네요. 그것은 바로 손바닥의 손금이 손등의 풍경이 되는 삶, 손금의 패인 자국이 손등의 툭 튀어나온 혈관이 되는 삶이지요, 가난한 가족을 위해 움직였을 그 손등의 혈관이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당신의 손등에 튀어나온 혈관은 누구를 위해 움직인 적이 있느냐고. 시인'경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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