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벽(가명'48) 씨는 폐결핵 환자다. 혼자 숨 쉬는 것이 벅차 산소 호흡기에 의존하고 수시로 가래를 뱉어낸다. 그의 인생에는 굴곡이 많았다. 19년 전 아내가 집을 나갔고 집 수리 일을 하면서 혼자 외동딸을 키웠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일이었기에 김 씨는 몸이 아파도 계속 현장을 다니며 남의 집을 고쳤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몸은 지키지 못했다. "결핵이 참 무서운 병이네요. 표시도 안 나게 조금씩 조금씩 내 건강을 갉아먹고 있어요." 그가 또다시 기침을 한다.
◆"내 몸부터 챙길 것을"
20일 오후 대구의 한 병원 감염관리센터. 침대에 앉은 김 씨가 밥숟가락을 들고 힘겹게 식사를 했다. 김 씨는 밥을 반공기만 비우고 숟가락을 놓았다.
"결핵이 심해진 뒤 살이 더 빠졌어요. 식사라도 제대로 하셔야 하는데." 딸 경미(가명'19) 씨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아버지를 바라봤다. 김 씨의 몸은 앙상한 나뭇가지 같다. 키 158㎝에 몸무게 34㎏, 웬만한 초등학생보다 더 가볍다. 결핵에 걸린 뒤 한때 55㎏까지 나갔던 체중이 계속해서 줄고 있다.
그는 7년 전 결핵 진단을 받았다. 남들보다 기침이 잦았고 눈에 띄게 몸이 야위어 갔다. 주변에서 지켜보던 이웃들은 당뇨병을 의심하며 김 씨에게 병원에 가보라고 권했다. 결핵 진단을 받은 뒤에도 김 씨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암처럼 수술을 할 수 있는 병이 아닌데다 곧 죽을 병이 아니니 천천히 치료하면 된다고 여겼다. "먹고사는 게 바빴어요. 딸자식 공부시키려면 나라도 돈을 벌어야 하는데 건강에 투자할 시간이 어디 있나요."
그는 전국을 돌며 집 수리하는 일을 했다. 1t 트럭을 타고 경북 안동과 봉화, 부산 등을 돌며 낡은 주택을 고쳐주거나 집을 짓기도 했다. 김 씨는 "아버지에게 배운 집 수리 일이 내 유일한 밥벌이 수단"이라고 말했다. 지방 출장이 잦은 직업 특성상 김 씨는 어린 딸을 다른 사람 손에 맡겨야 했다. 김 씨의 아버지가 딸의 기저귀를 갈고, 밥을 먹였고 딸이 귀한 이웃집에 1년간 맡기기도 했다. 경미 씨가 네 살 때 동네에서 사라져 경찰에 신고하는 가슴 철렁한 소동도 있었다. "세발자전거를 사줬더니 경미가 옆 동네까지 자전거를 타고 갔더라고요. 그 일이 있은 후 다른 지방에 갈 때도 경미를 데리고 갔습니다."
◆힘겨운 투병에 마음의 짐까지
결핵은 무서운 병이었다. 2년 전 김 씨는 더 이상 일할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됐다. 기초생활수급자가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일은커녕 몸을 숙여 바지를 입는 것도 힘들어졌다. 김 씨는 얼마 전 대학병원 응급실에 실려가 가슴 사진을 찍고 충격을 받았다.
한쪽 폐가 결핵균에 감염돼 완전히 망가져 있었기 때문이다. 돈 때문에 치료를 계속 미루다가 결국 넉 달 전 병원에 입원했다. 보름 동안 진료비가 80만원이 나왔지만 김 씨는 이 돈이 없어 누나에게 손을 벌려야 했다.
그의 간병은 경미 씨와 조카 박미영(30'여) 씨의 몫이다. 올해 3월 대학에 입학한 경미 씨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곧장 병원으로 달려간다. 수업이 있을 때는 미영 씨가 외삼촌인 김 씨를 돌본다. 지난해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경미 씨는 원래 대학에 가지 않으려 했다. 힘든 가정 형편에 아버지에게 학비 부담을 떠넘기기 싫었고 하루 빨리 취업해 돈을 벌고 싶었다. 하지만 김 씨는 딸의 미래를 걱정했다. "요즘 대학 나와도 취업이 안 되는데, 못난 아비 때문에 딸자식이 가방끈이 짧아지면 안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경미 씨는 지역 전문대 호텔관광학과에 새내기로 입학했다.
김 씨가 기초생활수급자이기 때문에 병원비 부담은 크지 않지만 문제는 생활이다. 김 씨 수입은 정부에서 주는 생계급여 29만원이 전부다. 이 돈으로 생활이 안 돼 경미 씨는 겨를이 있을 때마다 시급 4천800원을 받고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우리 아빠잖아요. 이제는 제가 아빠를 돌봐야죠." 이제 갓 성인이 된 경미 씨의 어깨가 무거워 보였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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