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권 초기 고위 공직자 인사를 두고 대통령에 대한 이런저런 비판의 말들이 나돌 때 김만제 전 의원이 사석에서 재미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유신 철권통치가 끝난 후 총리를 맡은 어느 분이 내각 인선을 할 때 인명사전을 뒤적이며 사람을 찾은 적이 있다고 했다. 장관 할 사람이야 지천이었지만 유신 독재에 물들지 않은 이를 찾으려 하니 마땅한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이후 사람 구하기 어려운 사정은 더 심해졌다.
공천이 발표되자 '돌려 막기'니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말들이 또 쏟아졌다. 변화를 외친 여야 어느 곳도 변화를 실감할 인물을 내놓지 못했다는 실망감의 표시였다. 이목을 끌 슈퍼스타가 보이지 않는다는 평도 나왔다. 그러나 과연 우리 시대에 흠 없고 잘난 슈퍼스타가 몇이나 될까. 정치로는 무명의 안철수 교수가 차기 대권주자로까지 거론되는 상황도 따져보면 슈퍼스타의 빈곤이 부른 것이 아닐까. 대구경북에선 새누리당의 공천을 두고 '낙하산'이라는 비판도 거세다. 듣도 보도 못한 사람들이 수십 년 떠나 살다 난데없이 와서는 표를 달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볼멘소리들을 한다.
서울 사람들은 서울 아닌 지방을 시골로 여긴다. 규모만 작을 뿐 짜임새는 서울과 다르지 않은 대구조차 시골로 친다. 당연히 대구 사람은 촌놈이다. 서울이 대구 사람을 촌놈으로 여기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공부를 잘해도 서울로 보내고 직장도 서울에서 찾으려 한다. 제철 과일이나 물고기도 잘생긴 상등품은 서울로 올려 보내고 쇼핑도 서울서 해야 폼이 나고 아파도 서울 병원이 미덥다. 공무원을 비롯한 직장인도 마찬가지고 가수도 화가도 서울서 놀아야 실력을 인정받는다. 모든 게 서울이 먼저니 당연히 대구는 시골이고 대구 사람은 촌놈이 된다.
서울에서든 대구에서든 서울을 한 수 위로 쳐주는 현실에서 낙하산 공천은 어쩌면 고마운 일일 수도 있다. 마땅한 사람이 없는 시골에 잘난 서울 사람을 보내주니 액면으로만 보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제바닥 사람을 우습게 보는 판에 서울에서 골라 보내 주는 사람마저 싫다 한다면 이게 억지가 아닐까. 집토끼 소중한 줄 모르고 산토끼 쫓아온 대구의 자업자득이다.
국회의원은 주민의 의견을 대표하는 기관이다. 국회의원은 화려하지만 실상 국가 경영에 관해 그리 큰 권한이 없고 활동 영역도 넓지 않다. 머리 좋고 경력 많고, 넓은 인맥에 돈까지 풍족하면 국회의원 하기가 수월하다. 그러나 법을 만들고 나라 씀씀이를 따지고 점검하는 국회 고유의 일은 웬만한 상식과 지혜를 가진 이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오히려 서민과 눈높이와 삶의 질이 비슷한 사람들이 맡으면 탈이 적다. 더 많은 권력과 재물을 얻으려고 않기에 부정비리도 적어진다.
Mr. 쓴소리로 불리는 조순형 의원이 어제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맞붙어야 할 민주통합당 정호준 후보의 조부 정일형 전 의원과 자신의 부친 조병옥 박사와의 관계, 정 후보의 아버지 정대철 전 의원과의 동고동락한 동지적 관계를 설명하며 "정치도 사람이 하는 것이고 정치 이전에 사람의 도리가 앞선다"며 연장자인 자신이 물러섰다. 사람 사는 도리가 우선이라는 조 의원의 말은 국회의원은 특별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과 같다.
지난 18대 총선의 화두는 경제였다. 여야 무소속 할 것 없이 누구나 경제를 살리겠다는 구호를 내걸었다. 그러나 경제를 살리겠다는 말은 웃기는 이야기이자 거짓말이다. 경제학 공부깨나 했다는 후보는 아예 경제를 살리겠다는 말을 피했다. 국회의원 혼자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니란 걸 알기 때문이었다. 이번 총선에서도 공약과 구호가 난무할 터다. 그러나 단언컨대 경제를 살리겠다든지 지역 발전을 이뤄내겠다는 공약을 하는 후보는 십중팔구 거짓말쟁이거나 아니면 순진한 사람이다.
차라리 매달 한 번씩은 '등산을 같이 하자'거나 '동네 목욕탕에서 같이 땀을 빼자' '막걸리 집에서 만나자'는 말이 주민의 대표로서 진솔하고 실속 있는 약속이다. 대학들도 학생의 잠재적 가능성을 보고 신입생을 선발한다. 지금 당장 말 잘하고 그럴듯해 보이는 후보보단 앞으로 누가 더 잘할지를 따져야 한다. 저 사람이면 나와 말이 통하겠다고 여겨지는 후보를 뽑아야 내 표가 제값을 한다. 낙하산이든 토종이든 향후 집토끼를 만드는 일은 촌놈에서 벗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徐泳瓘/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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