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히 조는 동안 봄 속으로 뛰어들었다. 뒷산 넘어가는 출근길, 부지런히 조잘거리는 새소리는 담을 순 없어도 무지 예쁘다. 개띠인 나도 멍멍거리며 뛰어봐야겠다. 야옹아 너도 멍멍해.
성형외과 시험문제다.
직모(곧게 난 털)를 다른 곳에 옮겨 심으면 꼬부랑해지는 이유는?
1. 햇빛을 못 봐서
2. 눌려서
3. 모두 맞음
봄은 포유류들의 털갈이 철이다. 엄마들 이사철이기도 하다. 내 몸 조직 일부가 이사 다니듯 옮겨 살게 하는 걸 '이식'이라고 한다. 여자들은 많아서 털 뽑는 검객 찾아다니고, 남자들은 가리려고 털 심는 검객을 찾는다.
털 안 빠지게 모든(?) 노력 다 해보고도 안 되면 이사를 시켜 드린다. 일단 마음먹으면 일도 아니다. 털이란 게 이상해서 이사 가면 한동안 원래 고향을 잊지 못하고 있다가, 차츰차츰 옮겨간 곳의 몸 법칙을 따르는 신기한 적응이 일어난다. 몸의 지역지배 버릇(recipient domain)과 신경, 호르몬 등이 이유다. 뽑거나 심거나 간에, 우리나라는 털 강국이고 특히 대구는 세계적인 털 도시다. 많은 명사들께서 수개월씩 기다려 대구에 와서 털 세우고(?) 간다.
돌아누워 얼굴을 베개 속에 파묻고, 뒷머리에서 건강한 털들을 떼어내서 세월의 강 너머 털 빠진 곳에 눈물과 정성으로 심는 수술이 끝나면 신기하게도 이식된 털은 빠지고 뿌리에서 새싹이 난다.
이론과 수술기법이 구름 속에서 오리무중(五里霧中)일 때 짜잔~하고 대구마검 중 모 교수님께서 쇠젓가락으로 밥 먹는 민족기량(?)을 살려 모낭이식을 완성하고 널리 전수시켜 오늘의 명성이 있게 했다.
그래서 우리는 털 무시하면 큰일 난다. 대구 털 오늘도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 털로 인한 용모 광채효과도 역량 뚜렷하다.
이렇게 귀중한 털을 미워할 때도 있다. 수술을 주로 하는 성형외과의사들은 감염이 무지 싫다. 모낭과 피지선 속엔 정상적으로 많은 균이 살고 있는데 수술실 바닥에서 털이라도 발견되면 난리를 친다.
어쩔 것인가? 불을 지를 수도 없고 그래서 소독액으로 닦고 소독포로 싸고 테이프 붙이고 해서 털 가리고 수술한다. 그야말로 털과의 전쟁이다. 그래서 의사들은 함부로 털 깎기를 절대 안 한다. 수련의 시절, 함부로 환부 털 깎았다간 (털?)손상 죄로 감봉감이었다. 털 보면 덜덜 떨고 지냈다.
아무리 바빠도 털 부실부실 난 털 손검객들은 자기손 소독 때 훨씬 오래 걸리고 정성을 다한다. 검객을 오래 하다 보니 내 손등 털들은 살아남기를 포기하고 퇴거했다. 내 털 손도 오랜 기간 소독솔로 씻다 보니 맨손 되어 있다. 그래도 난 오늘도 정성 담아 수술하는 대구검객이다.
이경호 성형외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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