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상 백일장] 그리운 어머니/봄날의 산타/봄비/봄

♥수필1-그리운 어머니.

출가 전 선비 가문이고 양반 집안이라고 하시던 외할아버지의 말씀만 믿고 훌렁 시집 오셔서 '부창부수'와 '여필종부'만이 출가한 여성의 최고 덕목으로 여기면서 순종 일변도의 가치를 실천해 오셨던 한평생이 아니었습니까?

새벽 네 시. 잠든 가족들을 깨울세라 조심조심 발소리 죽여 가며 100여m나 떨어진 도랑물을 음용수로 사용하기 위하여 등짐 지고 수회씩 나르시던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땐 당신만이 해야 하는 몫인 줄 알았습니다.

아침마다 할아버지 문안인사 빠뜨리지 않으시고 떠 오신 냉수 한 사발 올리시던 당신의 효성스런 모습. 시골 장날, 키우시던 약병아리 팔아 박하사탕을 사 오셔서 "아버님 사탕 사왔습니다. 십 원에 열 개나 됩니다" 하며 봉지째 밀쳐놓으시던 모습은 효의 극치였습니다.

어릴 적 보자기에 책을 싸서 다니던 시절, 와이셔츠 박스로 만들어주신 끈 달린 등짐 책가방은 가히 당 시대 최대의 걸작품이었고 크지 않은 시골학교에 큰 뉴스거리가 되곤 했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던 큰 과수원에서 "일 중에 농약 치기가 제일 힘이 든다. 야야 넌 이다음에 커서 농사는 짓지 마라"고 하셨고 저는 "예. 저는 세무쟁이 될랍니더" 했지요.

저 어릴 적 농촌에는 밀주가 성행하여 세무서 직원들이 동네마다 암행 술 조사를 해서 벌금을 매기던 시절이었는데 동네를 돌며 집집마다 술독을 찾아내던 그 세무서 직원들이 그렇게 좋아 보였나 봅니다.

막내가 사업하다가 부도가 났을 땐 3일을 목 놓아 우셨다던 가여우신 우리 어머님. 지금 90도로 구부러진 허리의 애절한 모습은 인고의 삶의 훈장입니까? 효성의 결실입니까? 대가족을 꾸려 나가시던 자비와 사랑의 결정체랍니까?

제가 입대하던 1974년 여름날 떠나간 버스 뒤꽁무니에 대고 하염없이 흐르던 눈물을 훔치시며 손을 흔들어 주시던 꺼질 듯한 그 아름다운 모습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취침나팔 소리에 모포를 뒤집어쓰고 엉엉 울곤 했던 기억은 잊어버리고 싶지 않은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백발과 주름투성이로 얼룩진 가여운 어머님! 건강하시던 칠팔 년 전 승용차를 타고 팔조령을 오르며 그렇게 좋아하시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빨리 봄이 와서 경로당에도 나가시고, 저와 함께 또 팔조령에 들러 참미나리 한 다발 사 와서 한바탕 웃음꽃 피우지 않으시렵니까? 누워서 홀로 병마와 씨름하시는 당신을 애타게 그리며 소자 올림.

권종천(구미시 형곡동)

♥수필2-봄날의 산타

"여기서 750번 타고 가다가 우측으로 가면 북비산 로타리 전에 내려."

"알겠다. 이제 잘 안다. 어서 가거라. 내 알아서 간다."

부산에서 올라온 언니가 버스를 타고 가는 모습은 마치 어린아이의 걸음마를 보는 것처럼 불안하기에 승강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감삼역을 지나 푸른 버스가 서서히 언덕을 올라와 멈추었다. 언니가 버스에 오르면서 교통카드를 찍는데 버스 운전기사 아저씨께서 막대사탕을 건네주는 모습이 보였다. 얼떨결에 받고서는 자리를 잡는 언니, 기사 아저씨께서 오르는 승객 모두에게 한 손 가득 막대사탕을 들고는 하나하나 나누어 주고 있었다.

"자, 사탕 받으세요." 교통카드를 찍고 돈을 내는 것이 바쁜 승객들은 미처 생각지도 못한 아저씨의 막대사탕을 받아들고는 고맙다는 말을 하지도 못하고 멋쩍게 자리에 앉았다.

쓰르륵, 버스 문이 닫히기가 바쁘게 언니가 탄 버스는 다시 출발했고 사라지는 버스의 뒷모습을 보면서 봄날의 산타가 생각났다. 오늘이 3월 14일 화이트데이라고 사탕을 주시나 보다 혼자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대중교통인 시내버스를 운전하시는 분이 승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자신이 준비한 막대사탕을 나누어 주다니. 작은 막대사탕 하나로 그 버스를 타신 분들이 달달한 사탕의 맛을 즐기며, 기분까지도 달달해질 거라 생각하니 떠나는 그 버스에 타신 분들에게 부러움을 느껴졌다.

찬바람 속에서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더 간절해지는 것처럼 누구나가 이용하는 버스에서 나누어주신 작은 사랑의 사탕은 단순히 우리의 혀끝만을 자극하는 사탕이 아니라 각박해져가는 마음의 경쾌한 유연제가 되는 것 같았다.

부산에 내려간 언니가 기사 아저씨의 사탕을 받고도 미처 고맙다는 인사를 못했다며, 사탕으로 더 즐거운 대구 여행이 되었다는 말에 마음속의 봄빛이 더 청명해지는 것 같았다.

"봄날의 산타! 감사드립니다."

김복순(대구 달서구 이곡동)

♥수필3-봄비

개구리가 긴 잠 깨는 경칩에 봄비도 한결 축비구나!

보슬보슬 내리는 봄비 긴 겨울 동장군도, 봄 처녀가 대동한 봄비에는 어김없이 멀리 가고, 애틋한 새싹을 움트게 하는 그대는 봄비. 각시방 고드름을 녹이는 봄비. 삐죽빼죽한 연인의 거리를 까만 우산 속으로 파고들게 하는 봄비. 따뜻한 체온을 전하며, 내 무디어진 감성도 살며시 녹여주는 봄비. 갓 피어나는 새싹 같은 봄 처녀의 마음을 설레게 살포시 적셔주는 봄비. 순백의 목화송이처럼 부드러운 봄비. 오늘만큼은 등산을 하지 않아도 스케이트를 타지 못해도 봄비의 낭만이 훨씬 상큼하구나. 오늘만큼은 뽀얀 입김을 품으며 김 나는 호빵이라도 한 입 베어 먹었으면, 벗과 다정히 창 넓은 시골 카페 투박한 목탁 위에 따뜻한 커피 한잔 기울였으면….

만물이 가슴을 펴고, 희망을 꿈꾸는 자연처럼 봄비의 감정에 푹 젖어 보고 싶네. 아마도 이것은 봄비가 주는 우리들의 특권인지도 모르겠네.

나희봉(대구 달성군 화원읍)

♥시-봄

개나리는 배시시

목련은 헤벌쭉

벚꽃이 만개하면

봄은 가는 것

'봄'이 한 글자라서

짧은가?

오는가 싶더니

이내 가 버리니!

좋아했던 그 남(男)이 어느 날,

더 좋은 사람 만나라며

얄궂은 덕담을 남기고 가는 것처럼

봄은 그렇게 왔다가

그렇게 가버리는 것

그래서 봄에 대한

미련은 눈물이다

문권숙(대구 북구 팔달동)

※지난주 선정되신 분은 안영숙(대구 북구 구암동) 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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