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에 나가는 게 소원이라고 하셨던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어요."
2년 전 이맘때 북한의 천안함 폭침 당시 백령도 해상에서 시신 수색 작업을 하러 바다로 뛰어들었다가 목숨을 잃은 고 한주호 준위의 딸 슬기(22) 씨는 아버지가 아직도 옆에 살아계신 듯하다고 했다. 21일 오후 경북의 한 대학 캠퍼스에서 만난 슬기 씨는 올해 3학년이 돼 수업을 듣느라 여념이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버지의 죽음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지만 그리움은 여전하다.
이달 7일은 아버지의 기일이었다고 했다.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고향집이 있는 진해(경남 창원시)로 내려갔어요. 이제 슬픔을 누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빠 제사를 지내며 영정 사진을 보니 자꾸 눈물이 났어요."
슬기 씨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의협심이 강했다. 2009년 한 준위는 청해부대 1진으로 소말리아 아덴만에 파병됐다. 전역이 6개월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슬기 씨는 그런 아버지가 걱정돼 "소말리아에 가지 말라"고 붙잡았다고 했다. 하지만 한 준위는 "전쟁터에서 싸워보는 것이 소원"이라며 가족들을 설득한 뒤 소말리아로 떠났다.
"그땐 어려서 위험한 일에 앞장서는 아빠가 이해가 안 됐지만 지금은 이해가 돼요. 내가 꿈이 있듯이 전쟁터에 나가는 것은 군인이었던 아빠의 꿈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영어교육을 전공하는 슬기 씨의 꿈은 교사다. 그가 교사를 꿈꾸는 데는 아버지 영향이 크다. 오빠 상기(27) 씨는 현재 창원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슬기 씨는 "오빠가 초등 임용고시에 합격했을 때 아빠가 아주 기뻐하셨다. 하늘에 계시는 아빠가 나중에 내가 선생님이 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해 하실 것"이라고 했다.
2년이 지난 지금도 아버지의 흔적은 세상 곳곳에 남아 있다. 지난해 2월 경남 창원시 해양공원에는 한 준위 동상이 세워졌고 6학년 도덕 교과서인 '생활의 길잡이'에도 한 준위 이야기가 실렸다.
또 한 출판사가 나서서 '책임을 다한 숭고한 인생 한주호'라는 제목의 어린이용 그림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슬기 씨는 아버지를 가슴 속에 묻었다. "우리 아빠 멋지죠"하며 보여준 슬기 씨 휴대전화엔 군복을 입고 웃고 있는 한 준위 사진이 들어 있었다. 슬기 씨는 아버지가 늘 꿈꿔왔던 자랑스러운 딸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살겠다며 미소 지었다. 슬기 씨는 이제 희망을 말하고 있지만 취재진의 사진찍기 요청을 고사했다.
한편 포항, 구미, 안동, 경주 등지에서는 26일 '천안함 폭침 2주기 추모식 및 안보 결의대회'가 열려 천안함 46용사의 넋을 기리고 안보결의를 다졌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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