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세이 산책] 현대인의 처세법

평소 뉴스 빼놓고 웬만해선 텔레비전 앞에 앉질 않는다. 텔레비전이란 것이, 보면 볼 때 그때뿐, 나중에 가서 남는 게 없는 '공공의 적'이라는 어쭙잖은 소신 때문이다. 이런 내가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개그 프로에 넋을 놓고 있다.

텔레비전을 멀리하는 덕분에 얻는 것만큼이나 잃는 것도 적지 않다.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뚱할 때가 다반사다. 자연 우스개를 통한 생활의 지혜 같은 쪽에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일전의 일이다. 아내가 느닷없이 질문 하나를 던져왔다. 현대인이 성공할 수 있는 조건으로 뭐가 가장 중요한지 알고 있느냐는 거였다. 대답을 찾지 못해 머뭇머뭇하고 있으려니, "거 봐요"라면서 참 답답한 양반이라는 투로 자답을 한다. 자기도 텔레비전 명랑 프로를 보고 알았다면서 'ㄲ'이 들어가는 여섯 가지라고 일러준다. 그 여섯 가지란 곧 '꿈, 꾀, 깡, 끼, 꼴, 끈'이라는 것이다. 비록 우스갯소리일망정 듣고 보니 참 그럴듯하다며 고개가 끄덕여진다. 물론 지역마다, 사람마다 정서나 가치관에 따라 조금씩은 다를 수야 있겠지만, 근본을 따지고 들자면 엇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처세 방법도 시대 따라 바뀌는 것인가. 아시다시피 예전엔 지조며 절개 따위를 그 어떤 가치보다 으뜸으로 쳤다. 지조와 절개를 지키려다 목숨까지 잃는 일도 생겨났었다. 세상이 변하면서 요즘은 그런 걸 들먹이고 나서면 19세기 식이라고 콧방귀만 뀐다. 대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보다 앞서고 남보다 우위에 오르는 것을 지상최대의 과제쯤으로 여긴다. 이러다 보니 가치기준도 판이하게 달라져버렸다. 물론 신언서판이라는 말도 있듯이, 예나 지금이나 생김새 곧 '꼴'이야 여전히 사람의 으뜸가는 평가기준이 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나머지 다른 가치 관념은 세월 따라 변해왔다. 고리타분하게 지조가 어떠니 정절이 어떠니 하다가는 어리석고 미련한 족속이라고 핀잔을 듣기 일쑤다. 대신 뭐라도 성공하려면 그쪽으로 한번 미쳐 봐야 된다고들 한다. 연전에 어느 작가가 낸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는 책의 제목 역시 그런 뜻으로 읽힌다. 이것은 곧 '꿈'을 품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끼'를 발휘하여 '깡'으로 밀어붙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깡만 있어서 되는 것도 아니다. 깡만 갖고 무작정 덤벼들다가는 자칫 일을 그르칠 수 있다. 그래서 적당히 '꾀'를 부려야 하고, 거기에다 든든한 '끈'까지 뒷받침된다면 성공은 '따 놓은 당상'일 것이다. 사람이 이런 요소들을 두루 갖추기가 어디 만만한 일인가. 세상살이, 이래저래 참 어려운 과제다.

곽흥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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