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古宅은 살아있다] <13>청도 금천면 신지·임당리

동남향 터 안채, 상식 깬 북북서향 배치에 서린 뜻은?

소요당(逍遙堂) 박하담(朴河淡)이 입향해 서당으로 사용하던 터에 운강(雲岡) 박시묵(朴時默)이 1824년 살림집으로 크게 중건한 운강고택 안채. 안채를 중심으로 광채(왼쪽), 중문채(오른쪽), 행랑채 등 독립건물이 어울려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여느 고택과 달리 마당이 아주 넓다.
소요당(逍遙堂) 박하담(朴河淡)이 입향해 서당으로 사용하던 터에 운강(雲岡) 박시묵(朴時默)이 1824년 살림집으로 크게 중건한 운강고택 안채. 안채를 중심으로 광채(왼쪽), 중문채(오른쪽), 행랑채 등 독립건물이 어울려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여느 고택과 달리 마당이 아주 넓다.
조선시대 내시가옥으로 유명한 임당리 김씨 고택. 내시가 거주한 사랑채(가운데)가 대문(왼쪽)과 안채 사이에 자리해 안채 출입을 쉽게 통제하도록 건축됐다.
조선시대 내시가옥으로 유명한 임당리 김씨 고택. 내시가 거주한 사랑채(가운데)가 대문(왼쪽)과 안채 사이에 자리해 안채 출입을 쉽게 통제하도록 건축됐다.
운강이 공부하며 근대화 교육 강학소로 사용하던 만화정(萬和亭). 자연 암반을 그대로 살려 건물을 지었다.
운강이 공부하며 근대화 교육 강학소로 사용하던 만화정(萬和亭). 자연 암반을 그대로 살려 건물을 지었다.

조선시대 청도 금천면의 중심부는 동창천이 굽이쳐 흐르던 신지리, 임당리 방면이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면소재지가 현재의 동곡리로 옮겨가기 전에는 이 지역에 재력이 큰 문중이 세거지를 형성하여 대를 이어왔다. 동창천은 곳곳에 기암과 명승지를 만들어내며 이 지역의 고택에 수려한 풍광을 제공해주고 있다.

금천면 신지리에는 이 마을을 대표하는 운강고택과 운남고택, 섬암고택, 명중고택, 도일고택 등이 기와를 얹은 담벽과 도로를 사이에 두고 오밀조밀 모여 있다. 밀양 박씨 문중이 대를 이어온 고택들이다. 이곳 고택은 조선 후기 사대부가의 유풍(儒風)이 구석구석에 남아있다. 후손들이 재력이 늘면서 고택을 중수하거나 분가하면서도 고택의 품격과 서열 규범을 가려서 잘 지키고 있다.

인근 임당리에는 내시 가계가 400여 년 이어져 온 김씨고택이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일반 사대부가와는 다른 배치와 공간 구성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신지리 운강고택과 임당리 김씨고택은 서로 비교체험해볼 수 있는 매력이 있다.

◆신지리 운강고택

예전에 섶마리, 섶말 등으로 불린 신지리는 동네 전체를 동창천(東倉川)이 감싸고 있다. 넓은 시내가 휘돌아 나가며 암벽과 수림 곳곳에 용두소, 소요대와 같은 명승지를 만들었다. 이런 신지리의 중심은 다섯 채의 고택들이다.

그중 운강고택은 1520년(중종 15년) 밀양 박씨 소요당(逍遙堂) 박하담(朴河淡'1479~1560)이 입향해 터를 닦으며 시작됐다. 소요당은 조정의 벼슬을 사양하고 지금의 운강고택 터에 서당을 지어 후학을 양성했다. 이후 후손들이 점점 가산이 윤택해지며 기와를 올리고 사랑채와 별당 등을 증축하며 집터를 늘리다 운강(雲岡) 박시묵(朴時默)이 1824년(순조 24년) 크게 중건하여 이후 운강고택이라 불리게 됐다.

운강고택(중요민속문화재 106호)은 대지 1천770평에 9동의 건물을 둔 널찍한 규모의 대가다. 사랑 마당과 안채 마당도 넓은 편이다. 건물 배치는 사당을 맨 안쪽에 두고 그 앞에 두 개의 튼ㅁ자형 건물군을 결합시키고 있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대문채, 큰사랑채, 중사랑채, 광채 4동이 사랑채 영역을 형성하고, 안마당을 가운데 두고 안채, 행랑채, 광채, 중문채 4동이 대칭으로 배치되어 있다. 사당 앞에 백류원터가 있고, 안채와 사랑채 뒤에는 여유 있게 후원을 조성하고 감나무와 매화나무를 심어 놓았다. 안채 뒤뜰에는 작은 바위 7개가 있어 칠성바위라 불리는 곳이 있는데 여인들이 치성을 드리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안채는 마감재 하나하나에도 섬세하게 정성을 들여 지은 모습이 눈에 띈다. 제사 등 집안 대소사의 중심이 되는 안채는 부엌, 방, 마루, 방으로 구성되는 남부지방 민가의 형식을 따르면서 품격과 기능성을 동시에 수행하도록 지어졌다.

곳간채, 광채 등 수장용 건물의 합리적인 배치와, 남녀와 주종을 명확히 구별한 공간구성, 주택 내 서당(중사랑채)의 존재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운강고택은 조선후기 지방 상류층 주택문화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문화해설사 예태늠 씨는 "운강고택은 4대를 모시는 가묘와 ㅁ자 형태의 내외생활 분리, 안채 건물을 가장 높게 짓고 있으며 큰사랑과 중사랑채로 상하 구분을 분명히 하는 양반가옥의 규범을 잘 지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운강이 강학하던 만화정

운강고택에서 금천교 쪽으로 300m쯤 떨어진 동창천변에는 운강이 공부하며 근대화 교육의 강학소로 사용하던 만화정(萬和亭)이 있다. 정자 주변에 있던 바위와 나무를 훼손하지 않고 자연을 잘 살려 화려하게 지은 정자다. 정자 앞의 떡버드나무 수그루는 가지가 부러져도 새싹이 또 올라오면서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 20여만 명이 이곳 동창천변으로 몰리자 이승만 대통령이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방문했다가 만화정에서 하룻밤을 묵고 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만화정은 정자를 중심으로 ㄱ자형 평면으로 온돌방과 마루, 누마루로 구성되어 조선후기 정자의 특징을 따르고 있다. 정자에는 주변의 풍광과 주인의 덕을 예찬하는 문인들의 편액이 빼곡히 걸려 있다.

운강은 이곳에서 학생들에게 학비와 숙식료를 받지 않고 오직 공부에만 전념하도록 했고, 문인들과 교유하며 여러 권의 저서를 남겼다.

◆임당리 김씨고택

신지리 운강고택에서 5분 거리인 임당리에는 임금을 받들며 살았던 내시 가계가 1500년대부터 400여 년간 이어져 온 임당리 김씨고택(중요민속자료 245호)이 있다. 한양 궁궐 주변이 아닌 지방에서 여러 대에 걸쳐 살면서 조성된 내시가로는 이 고택이 유일하다.

가옥을 실측 조사하면서 사당의 바닥 자리 밑에서 입향 시조 이후 15대까지 기록돼 있는 가첩이 나왔다고 한다. 실무 직함과 이름, 본관, 산소의 위치가 상세히 기록돼 있고 가첩의 주인 16대 김일준(金馹俊'1863~1945)은 벼슬이 정3품 통정대부까지 올랐다고 한다.

김일준은 궁궐에서 이곳에 내려와 주변 마을에 좋은 일을 많이 하고 덕을 베풀어 그의 장례를 치를 때는 이 일대가 조문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마을 중심부에 위치한 김씨고택은 솟을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특이하게 사랑채가 왼쪽으로 비스듬히 자리 잡고 있다. 중사랑채를 끼고 있는 안채는 사방이 높은 담장과 건물로 둘러싸여 있어 아주 폐쇄적인 형태다. 일반 사대부가보다 더 엄격하게 안채의 노출을 꺼리고, 사랑채가 안채 출입을 통제하는 구조다.

청도군 문화관광과 임형수 씨는 "내시 가문 양자의 며느리로 들어온 여인은 친정 부모의 상을 당했을 때를 제외하고 밖으로 나갈 수 없었으며, 또한 어떤 여인인지 알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채는 지형상 동남향으로 배치가 가능함에도 북북서향이다. 이는 궁을 떠났지만 임을 향한 단심을 보여주는 것으로도 해석되고 있다. 안채에 딸린 곳간이 2개 동이나 되고 크기도 넓어 당시의 가세를 짐작할 수 있다.

◆고택 숙박체험 가능한 선암서원

선암서원(문화재자료 271호)은 삼족당(三足堂) 김대유(金大有) 선생과 소요당 박하담 선생 두 분을 향사하던 곳이다. 처음엔 매전면 운수정에서 위패를 봉안하고 향사하다 1577년(선조 10년) 당시 청도군수의 주선으로 현재의 위치로 옮기고 선암서원이라 개칭하였다.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878년(고종 15년) 소요당의 후손들이 다시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선암서원은 사람의 훈기가 느껴지는 전통고택 숙박체험관으로 말끔히 단장됐다. 숙박은 2, 3인실부터 10~12인실까지 다양하며, 이곳에서 머물며 전통 한옥의 분위기와 아늑함을 즐길 수 있다. 여름 휴가철에는 사람이 몰리며, 사전 예약(010-5345-8445)이 필요하다. 관리인 박향숙 씨는 "한옥과 어우러진 자연을 즐기며 시골 밥상, 다도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신지리 운강고택과 임당리 김씨고택은 대문이 잠겨 있어 청도군청 문화관광과(054-370-6062, 6372)로 미리 연락하면 만화정 주변에 상주하는 문화관광해설사의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청도'노진규기자 jgroh@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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