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8)는 올해부터 학교에 가지 않는다. 이란성 쌍둥이인 언니 정현이는 초등학교 2학년이지만 정화는 할머니집에서 지낸다. "친구들이 '바보'라고 놀려서 학교에 가기 싫어요."
정화 얼굴을 자세히 보면 얼굴 왼쪽이 위로 올라가 좌우 대칭이 맞지 않는다. 선천적으로 두개골의 접합 부분이 굳어 두뇌의 성장을 억제하는 '두개골 조기유합증'이라는 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엄마 신선희(43) 씨는 "정화가 두 살 때 머리 기형을 바로잡는 큰 수술을 했는데도 여전히 얼굴이 삐뚤어졌다. 정화의 얼굴만큼 아이가 앞으로 견뎌야 할 상처도 걱정된다"고 말했다.
◆1.8㎏으로 태어난 정화
정화와 정현이는 2004년 미숙아로 태어났다. 엄마 배 속에서 37주 만에 나온 쌍둥이들의 몸무게는 정화가 1.8㎏, 정현이가 2.4㎏으로 신생아 평균 체중인 3.3㎏에 한참 못 미쳤다. 엄마 선희 씨는 돌이 채 되지 않은 정화를 수술대에 눕혀야 했다. 대학병원에서 '두개골 조기유합증'이라는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병에 걸리면 외모가 삐뚤어지고 두뇌 발육 부전과 지능 저하, 시신경 압박에 따른 시력 장애 등 여러 가지 증상이 나타난다. "병원에서 하루빨리 수술해야 한다고 해서 정화는 CT 사진을 찍고 12시간 넘게 걸리는 수술을 받았어요. 몇 년 전엔 사시(斜視) 증상 때문에 교정술도 받았고요. 아이가 힘들었을 것을 생각하니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요."
선희 씨는 머리 기형 수술비 2천만원을 마련하기 위해 한 방송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았다. 남편 없이 두 아이를 혼자 보살펴야 했던 그에겐 큰돈이 없었다. 선희 씨는 결혼을 하지 않고 쌍둥이를 낳았다. 그가 임신 8개월 때 술을 좋아했던 남자는 선화 씨 곁을 떠났다. 남자가 남긴 것은 사랑에 대한 미련이 아니라 빚이었다. "지금도 신용회복위원회에서 '부채를 분할 상환하라'는 우편물이 날라와요. 애들 병원비도 없는데 빚 갚을 돈이 어딨나요."
◆얼굴이 삐뚤어진 아이
정화는 '장애'라는 단어를 싫어한다. 아이는 장애의 정확한 의미는 몰라도 이 단어가 '남들과 다르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학교 친구들은 정화를 마구 놀렸다. 두 살 때 받았던 수술 자국을 감추기 위해 정화는 머리를 파마하고 앞머리를 내렸지만 아이들은 그것까지 찾아냈다. 같은 학교 남자애들이 정화를 '바보'라고 놀리며 계단에서 밀어서 크게 다친 적도 있었다.
"머리 기형 때문에 정화 얼굴이 삐뚤어져 자꾸 오른쪽으로 쏠려요. 애들 눈에는 그게 바보처럼 보이니까 정화를 자꾸 놀리는 거죠."
학교에 가기 싫다고 울던 정화는 결국 한 해 학교를 쉬기로 했다. 정화는 언어 장애도 갖고 있다. 왼쪽과 오른쪽을 구분하지 못하고 사계절을 외우지 못한다. 그래도 정화가 잘하는 것이 있다. 정화는 청력이 발달돼 한 번 들은 음은 악보를 보지 않고 피아노를 친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아이큐 138을 판정받을 만큼 머리가 영특하다. 엄마는 정화에게 중고 피아노라도 한 대 사주고 싶지만 현실이 따르지 못한다. "정화가 국어와 수학 등 학교 정규 교과과정을 따라가는 데는 힘들어하지만 음악에는 소질이 있는 것 같아요. 아이의 꿈을 키워주고 싶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네요."
최근에는 성조숙증 진단까지 받았다. 사춘기도 아닌데 가슴 발달과 초경이 벌써 시작됐다. 선희 씨는 이 모든 게 자신의 탓인 것만 같다. 배 속에 있을 때 쌍둥이에게 스트레스를 많이 줘 아이에게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선희 씨는 "정화는 성장 속도를 늦추는 호르몬 주사를 맞아야 하는데 이것도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계속 늦추고 있다"고 걱정했다.
◆ 수술비를 어떻게 마련하죠
정화는 다음 달 한 차례 더 큰 수술을 받아야 한다. 시간이 갈수록 얼굴 비대칭이 심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개골을 절개해야 하는 대수술인 탓에 다음 달 서울대병원으로 가 수술을 받기로 했다.
문제는 수술비다. 이 수술은 '성형'으로 간주돼 정부의 의료비 지원을 받을 수 없다. 최소 1천만원의 수술비가 예상되지만 선희 씨는 이 돈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두 아이 양육과 치료 때문에 아르바이트도 제때 할 수 없는 엄마에게 수천만원이 있을 리 없다.
원래 쌍둥이 자매는 언어 장애 3급 판정을 받고 장애수당을 받았지만 올해부터 그마저 끊겼다. 지난달 '장애로 여길 만큼 심각한 수준이 아니다'라는 판정이 나와 장애수당 혜택이 사라졌다.
이제 생계급여 80여만원으로 정화의 치료와 세 식구가 생활해야 한다. 선희 씨는 쑥쑥 커가는 아이들에게 새 옷을 사줄 형편이 안 돼 주변인들에게 헌 옷을 얻어 입힌다.
"얼마 전에 쌍둥이들이 그러더라고요. '엄마, 나도 새 옷 입고 싶어!' '우리집은 왜 가난해?' 가난이 제일 무서운 건 아플 때 돈이 없어 병원에 갈 수 없다는 건데 아이들은 아직 어려서 가난이 뭔지 몰라요."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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