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일 외 제3국 포함한 객관적 조사기구 설치를"

위안부문제에 관한 하타노 스미오(오른쪽) 일본 쓰쿠바 대학교 교수의 견해를 이성환 계명대 국경연구소장이 통역하고 있다.
위안부문제에 관한 하타노 스미오(오른쪽) 일본 쓰쿠바 대학교 교수의 견해를 이성환 계명대 국경연구소장이 통역하고 있다.

계명대 국경연구소는 28일 계명대 스미스관에서 일본 쓰쿠바(筑波)대 하타노 스미오(波多野澄雄'65) 교수를 초청, '위안부 문제와 일본의 대응:국경을 초월한 평화를 위해'라는 세미나를 열었다. 이날 세미나에는 1천여 회를 훌쩍 넘긴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의 관심을 반영하듯 많은 대학생이 참석했다. 이날 통역은 계명대 이성환 국경연구소장이 맡았다.

하타노 교수는 일본정부의 아시아역사문제 전문가로 '아시아 여성기금 자료조사위원회' 위원과 일본외교문서 편찬위원장이며, '전후일본의 역사문제'란 책을 냈다.

하타노 교수에 의하면 패전 후 '전후보상'은 법적으로 완료됐다는 것이 현재 일본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게다가 한국은 1965년 한일청구권과 경제협력협정을 맺음으로써 양 국민의 청구권 문제는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것.

하지만 정부 간 보상이 끝났다고 해도 개인은 여전히 일본정부에 피해보상을 청구할 권리가 유지돼 왔다. 그런데 이마저도 2007년 4월 일본 대법원이 '피해국 국민의 청구권 행사가 과도하게 일본 재정을 압박할 가능성'과 '자국민 전쟁 피해자와의 균형' 등을 이유로 일본은 전후보상 종식을 선언, 사실상 일본 내 위안부 개인보상에 관한 법적 해결의 길을 막았다.

"비록 법적 보상의 길이 막혔더라도 일본은 최대 피해국인 한국 여성의 명예와 존엄을 깊이 손상시킨데 대해 '역사의 교훈'을 위해서라도 적절한 사죄와 반성을 표해야 합니다."

하타노 교수는 1992년 미야자와 내각 때 위안부 문제에 관한 자문위원회의 보고서를 통해 이런 의견을 일본정부에 전달했고, 정부 입장의 변화를 가져오기도 했다. 그 증거가 1995년 민관 합동으로 이뤄진 일본의 '아시아 여성기금' 조성. 하타노 교수는 아시아 여성기금 자료조사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이 기금수혜를 거절했다.

사실 일본은 '전쟁'과 '식민지'라는 두 측면을 하나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때 패전국으로서 전쟁에 대한 모든 책임을 다한 만큼 위안부 보상을 포함한 식민지 피해에 대해서도 더 이상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일본정부의 오류가 여기에 있죠. 일제의 가장 큰 피해국인 한국에 대해 보다 확실한 보상을 못함으로써 오늘날 위안부문제로 양국 갈등의 골이 깊어진 것은 분명 일본의 어리석음입니다."

하타노 교수는 이어 일본 내 우경화 세력의 팽창도 정확한 역사인식이 없어서 생긴 부작용이라고 했다. 최근 나고야 시장이 '한국의 위안부와 중국의 남경대학살은 그 자체가 없었다'라고 하자 도쿄시장이 이에 맞장구를 쳤다. 이런 극단적 주장들은 1995~1996년 이뤄진 '유엔인권위원회 보고서' 내용도 한몫 했다. 일본 외무성에서 각종 외교문서를 열람한 그는 유엔인권위의 내용이 그야말로 형편없는 사실들로 가득 차 있었다고 말했다. 보고서 내용을 접한 일부 일본인들과 미디어가 역사를 왜곡하는 바람에 일본 내 우경화 세력이 더욱 힘을 얻었다는 것.

"명백히 한일 양국의 역사적 입장 차는 존재합니다. 그렇지만 현재 일본은 민주당이 정권을 잡고 있습니다. 자민당보다는 훨씬 유연한 정책을 구사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럴 때 양국 갈등의 원인이 되는 위안부문제를 원만히 해결한다면 양국의 미래는 밝다고 봅니다. 이를 위해 한일 양국과 제3국 연구자들이 모인 객관적 조사기구를 설치, 위안부문제를 파악한다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타노 교수는 이에 덧붙여 "만일 아시아 각국이 공동 대학을 세워 학생들이 함께 공부하고 역사문제를 연구해 이를 각국 역사에 반영한다면 동아시아 관계가 보다 훨씬 우호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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