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선거 투표율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15대 선거 때 63.9%로 처음 70% 선이 깨진 뒤 계속 내리막길을 걸어 18대 선거 때는 46.1%까지 낮아졌다. 이런 투표 기피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 중 하나가 '합리적 무지'(rational ignorance)이다. 이는 어떤 정보가 주는 이득보다 그것을 얻기 위한 비용이 더 큰 경우 그 정보를 얻지 않고 무시하는 게 '경제적'으로 합리적이라는 데에 착안하고 있다. 이를 선거에 대입하면 후보자가 어떤 사람인지, 그가 내건 공약이 과연 현실성 있는 것인지 등을 판단하려면 품을 많이 들여야 하는데 그렇게 해봐야 현실적으로 얻을 것은 별로 없다. 그래서 그런 노력을 하지 않거나 아예 투표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 부추기는 요인은 또 있다. 설사 후보나 정책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었다 해도 그 정보에 근거한 판단이 자신이 바라는 선거 결과를 낳을지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이다. 남들도 내가 지지하는 후보나 정당에 투표할 것임을 안다면 모르겠지만 비밀투표이기 때문에 그것은 불가능하다. 나의 한 표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면 투표는 합리적인 행위가 아니다.
이는 개인 차원에서는 '합리적'이지만 유권자 전체에게는 매우 불합리한 결과를 가져온다. 자격 미달 후보가 당선돼 정치 발전이 지체되고 선거 기간 중에만 유권자에게 고개를 숙인 뒤에는 유권자 위에 군림하며 사익을 탐하는 정치 모리배가 활개 치게 된다. 이런 취약점은 합리적 무지가 아니라도 '선거 민주주의' 자체에 내재되어 있다. 루소는 이미 2세기도 전에 이를 간파했다. "영국 인민은 스스로를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큰 착각이다. 그들이 자유로운 것은 오직 의회의 의원을 뽑는 기간뿐이다. 선거가 끝나는 순간부터 그들은 다시 노예가 되어버리고 아무 가치 없는 존재로 전락하다." 합리적 무지는 이 같은 유권자의 '노예화'를 더욱 심화시킨다.
19대 총선을 앞두고 지역의 젊은 층에서 투표 포기 의사가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학업 및 취업 준비와 아르바이트 때문에 투표할 여유가 없어서라는 게 그 이유다. 큰일이다. 민주주의가 꽃핀 고대 그리스에서는 공적인 일에 무관심한 채 사적인 일에만 몰두하는 사람을 '이디오테스'(ideotes)라고 했다. 영어 단어 'idiot'(바보)의 어원이다. 정치 모리배에게 이들 이디오테스의 합리적 무지는 더없이 좋은 서식 환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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