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최대 필화사건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선비답지 않게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과 귀신 이야기 등 잡스러운 것에서 문학의 소재를 취하고 경박하게 표현한 죄로 유배를 가고 관직을 얻지 못한 인물이 있었다. 그는 바로 정조 때의 문인 이옥이다. 조선의 문장가 이옥과 김려 이야기를 다룬 설흔의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를 읽었다.
이 책의 화자는 김려다. 그는 고을 현감으로 비교적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으나 그의 일상을 뒤흔드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옛 벗 이옥의 아들이라 스스로를 소개한 우태다. 우태로 인해 김려가 애써 잊고자 하였던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벗 이옥의 문체를 문제 삼은 임금과 끝내 고집을 버리지 않은 벗, 벗의 유배와 종당에는 자신에게 미친 횡액까지.
벗을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고자 하였으나 결국 아들의 존재를 통해 벗을 인정하게 되는 김려 역시 이옥과 비슷한 글쓰기 방식을 남몰래 고수하고 있었다. 개혁 군주 정조가 그토록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벌을 주어서라도 고치고자 했던 이옥의 문장은 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옛 이야기 작가 서정오 선생이 다듬어 쓴 '일곱 가지 밤'에는 이옥의 단편들이 실려 있다. 그의 주인공들은 초상집 곡소리에서도 노래를 찾아낸 소리꾼 송귀뚜라미, 귀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외려 귀신의 밥상을 먹어치운 최생원,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때문에 세상을 버린 처녀, 미워할 수 없는 사기꾼 이홍, 남의 시험을 대신 쳐 주고 먹고사는 류광억, 귀신인지 사람인지 알 수 없는 신병사, 호랑이를 길들인 며느리 등 누구에겐 길고 누구에겐 짧은 밤의 일곱 가지 얼굴 등이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도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마치 살아 있는 사람들이 지금이라도 나타날 듯이 생생한 이옥의 인물들. 요즘과 견주어도 조금도 처지지 않는 발랄하고 경쾌한 문체.
이옥이 이런 글을 쓴다고 해서 세상에 해를 끼쳤을 것 같지도 않은데 정조는 왜 그의 글을 그토록 못마땅해했을까?
정조는 17세기 청나라를 통해 들어온 서적의 영향을 받아 문학에서 일어난 새로운 변화를 못마땅해하며 꺾으려고 하였다. 그는 즉위하면서부터 과거를 개혁하고 과거의 문체를 고치고자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대신 그가 적극적으로 관리하고자 한 것이 성균관 유생들의 문체였다. 물론 문체반정의 동기는 매우 복잡하며, 성격 까칠한 군주 정조에 의해 독단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실제로는 박지원이 정조가 노린 문체반정의 핵심 인물이었고 이옥은 희생양이었다고 보기도 한다.
이옥의 벗, 김려도 함경도 부령이라는 곳에서 5년이나 귀양살이를 하였다. 유배를 떠나는 길과 유배지에서 그는 각박한 세상인심을 쓰라리게 맛보았다. 북쪽의 차가운 바닷가 마을인 부령에서도 탐욕스러운 관리 때문에 백성들의 삶은 곤궁하였고 고통스러웠다. 세금이 무서워 한 마을의 어부들이 모두 달아나버리기도 하고, 대궐에 쓴다며 나무를 잘라내어 고스란히 착복해버리는 관리들의 횡포를 속수무책으로 지켜보아야 했다. 하지만 부령에서의 생활이 노상 괴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을 이해하고 보살펴주는 연희라는 여인을 만났고, 아이들을 가르치며 기쁨을 맛보았다. 범을 한 손으로 때려잡을 만큼 용맹하고 무술에 뛰어난 북쪽 사람들을 보고 놀라워하고 그 재주를 아까워하기도 하였다.
아버지를 닮아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 들려주는 것을 일로 삼는 우태를 보며 옛 벗과 기억들을 되살려낸 김려. 이옥을 잊고 자신의 글을 숨기고자 하였던 김려가 현감 직위를 버리고 자신을 찾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한낱 성균관 유생의 문장을 까다롭게 물고 늘어진 정조나, 유배를 가고 관직을 얻지 못하게 되어도 고집을 꺾지 않은 선비 이옥.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갖고도 시대와의 불화를 마다하지 않고 자신의 세계를 지켜나간 이옥과 그의 벗 김려의 삶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또 다른 울림을 준다.
신남희 수성구립 용학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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