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부터 지금까지 필자는 모 국제단편영화제의 상영작 결정을 위한 예심을 진행하고 있다. 국내 고등학생의 작품부터 해외 기성감독의 작품까지 천차만별의 이야기와 스타일을 가진 출품작들을 보고 있으니 마치 여러 개의 세계와 삶을 사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처음에는 무섭기도 했다. 작품을 아무리 넘겨도 영화제에 상영할 만한 작품이 좀처럼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전에 본인의 단편영화를 보던 심사위원들의 마음이 그러했으리라. 그렇게 다시 작품 DVD를 교체하기를 몇 번, 드디어 올해의 보석 같은 영화들이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매년 각종 영화제에 출품되는 단편영화들의 성격을 살펴보면 그 시기의 사회적 이슈나 개인이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IMF 직후에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해체되는 가족의 모습이나 고립되는 인물을 다루는 작품이 대세를 이루었고 밀레니엄 시대를 맞이하면서는 다가올 미래에 대한 불안이나 세기말의 정서를 반영한 영화들이 주류였다. 그렇다면 최근 제작되는 단편영화들의 경향은 어떠할까?
먼저 1990년대나 2000년대 초반과 지금의 단편영화는 제작 주체가 많이 바뀌었다. 기존에는 '독립영화'의 성격을 가진 영화제작단체나 사회인들이 문화운동의 목적으로 작품을 제작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는데 최근에는 대학에 많은 영화학과들이 개설되면서 전공 대학생들의 작품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이러한 제작 주체의 변화는 이야기의 소재와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젊은 세대로 갈수록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것처럼 영화 역시도 사회에 반응하는 개인의 심리나 자아에 관한 이야기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한편 작품의 기술적인 완성도는 예전보다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어린 시절부터 영상문화를 누려온 '영상세대'인 현재의 젊은 영화인들이기에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에 비해 이야기의 완성도는 예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거나 오히려 퇴보한 측면이 있다. 이는 개인적으로 요즘 세대들이 쉽게 영상자료들을 관람할 수 있는 환경인 데 비해 전반적인 독서량 자체가 부족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 역시 지금은 걸음마 단계에 있는 국내의 '시나리오' 관련 학문 연구와 교육이 발전하면서 해결되리라 생각한다. 다만 근본적으로 최근 영화연출 지망생들의 독서량 자체는 심히 우려스럽다. 책은 안 읽고 이야기는 어디서 나오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앞으로 기성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신선하고 생동감 있는 단편영화들이 관객들에게 더욱 많이 소개되기를 기대하며 후배 영화인들에게 격려와 함께 혁신과 분발 역시 강조해 본다.
영산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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