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우리 가족 이야기] 구순 노모와 칠순 사위

"자네, 술 좀 할 줄 아는가?" "아닙니다. 저는 밀밭에만 가도 취합니다." 친정엄마와 우리집 양반이 상견례 시 나눈 첫 대화였다. 친정아버지도 형부도 술을 너무 좋아하시는 분들이라 둘째 사위는 술 못하는 사람을 맞겠다고 기대감에 부풀어 계시던 중 이렇듯 명언을 쏟아내니 우리 엄마 얼씨구 좋아하셨다. 그 날도 해장술에 얼근했지만 인연의 고리로 눈치 못 채시고….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아버지와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모습에 "아이구 얄궂어라. 내가 박 서방한테 깜박 속았네. 저리도 술을 잘 마시는구만."

늙으면 어린애가 된다더니 우리 엄마가 그렇다. 올해 94세의 친정엄마는 당신 홀로 끼니도 잘 끓여 드시며 '조선왕조500년'을 독파하시며 회심곡도 곧 잘 읊으시지만 딸네 집에 와서 사위만 보면 어리광을 부리신다.

손발톱을 깎아 달라, 책을 읽어 달라는 친정엄마의 요구에 "예, 엄마! 엄마"하면서 장모의 수발을 받아주는 영감이 참으로 정겹다. 우후죽순 생겨나는 요양원 때문에 효가 많이 퇴색되어가는 요즘 영감과 엄마의 모습에 가슴이 찡하다. 손톱 깎느라 정신없는 두 사람을 살짝 휴대폰으로 찍어봤다. 사진관에 가서 현상을 하려고 했더니 옛날 휴대폰은 현상이 안 된단다. 할 수 없어 옆집 친구의 스마트 폰에 사진을 옮겨 한 장 뽑았다. 좀 희미하긴 하지만 얼마나 보기 좋은지 보고 또 본다. 칠순이 넘은 영감이 장모의 손톱을 깎으며 정성을 다 하는 모습에 감사하며 "영감! 고맙소".

조기현(대구 수성구 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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