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大幹 숨을 고르다-황악] <14>직지사 누각과 전각들③

비로전, 득남 기도처로 효험…명부전엔 박 전 대통령 내외 봉안

직지사 비로전은 1천 개의 불상을 모시고 있는 득남 기도처이다. 비로전에 들어가서 첫눈에 발가벗은 동자 입상을 찾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이 있다. 임진왜란 때 대부분의 전각들이 불에 탔으나 유일하게 화마의 참화를 피한 전각이다.
직지사 비로전은 1천 개의 불상을 모시고 있는 득남 기도처이다. 비로전에 들어가서 첫눈에 발가벗은 동자 입상을 찾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이 있다. 임진왜란 때 대부분의 전각들이 불에 탔으나 유일하게 화마의 참화를 피한 전각이다.

봄 날씨가 예사롭지 않다. 어제는 봄비가 촉촉이 내리더니 오늘은 아침에 잠깐 햇살이 비치다가 지금은 진눈깨비가 내린다. 내린 진눈깨비의 양도 제법 많다. 내리기 무섭게 흔적 없이 녹아서 쌓이진 않지만 4월이 코앞인데 웬 변덕인가 싶다. 게다가 바람까지 휘몰아친다. 하루 종일 날씨가 개었다 흐렸다를 반복한다. 봄처녀의 마음 같다. 겨우내 앙상하게 탄력을 잃은 나뭇가지가 바람의 등쌀에 힘겨워 '우둑' 소리를 내며 부러지기도 한다. 황악산 정상은 내린 눈이 쌓여 하얀 털모자를 눌러쓴 듯하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이다.

◆득남 기도처로 잘 알려진 비로전

전각(殿閣)의 사전적 의미는 임금이나 왕족이 사는 큰 건물, 즉 궁궐을 뜻한다. 사찰에서는 전각에 부처를 모신다. 궁궐이나 사찰이나 전각들이 이마를 맞대고 늘어선 모습은 닮은 점이 많다. 직지사에서 대웅전 다음으로 가장 큰 전각이 비로전(毘盧殿)이다. 고려 태조 때 능여조사에 의해 처음 세워졌다. 비로전은 1천 개의 불상을 모시고 있다고 해 천불전(千佛殿)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 때 일주문, 천왕문과 함께 다행히 불의 참화를 피한 유일한 불전이다.

비로전은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모시고 있다. 14개 나무계단에 경주 옥돌로 조각한 1천 개의 불상이 모셔져 있다. 과거, 현재, 미래의 삼겁(三劫)에서 각각 천불이 났다고 전한다. 비로전은 현재의 천불을 모시고 있다. 천불상 중 같은 모양을 한 불상이 하나도 없을 만큼 정교하게 제작됐다. 천불상은 임진왜란 때 화마의 손길에서는 벗어났지만 전란으로 많은 불상이 없어졌다. 일부는 왜구들이 가져갔다고 전한다. 그래서 오랫동안 불완전하게 전해오다가 정조 때 이를 다시 보완해 1천 불상을 맞추었다고 한다.

직지사 천불전은 '득남 기도처'로 효험이 있다고 알려지면서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아들을 낳지 못한 여인이 천불전에 들었을 때 발가벗은 입상인 동자상을 첫눈에 발견하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지금 동자상은 법당 가운데 비로자나불 뒤에 발가벗은 모습으로 홀로 서 있어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다. 예전에는 수시로 장소를 옮겨 놓아 첫눈에 찾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남아선호사상이 극성일 때는 하루에도 수십 명씩 이곳을 찾아 기도를 올리고 동자상을 보고 갔다고 할 정도로 명성을 떨치기도 했다.

이곳 박영숙 문화관광해설사는 "어르신들이 가끔 장성한 아들과 가족을 데리고 찾아와 '네가 천불전 동자상을 본 후 들어서서 낳았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고 말했다.

비로전 앞에는 3층 석탑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탑 모양이 대웅전 앞 쌍 석탑과 닮았다. 이 석탑도 문경 옛 도천사지에 있던 것을 함께 옮겨왔다. 비로전 앞에는 벌써 연등 달기가 한창이다. 아직 황악산 정상에는 눈이 녹지 않았고 음력 3월 초순이다. 석가탄신일이 2달여 남았으나 부처님을 맞이하고픈 불자들의 마음은 요즘 농사를 준비하는 농심만큼이나 설레고 분주한 모양이다.

◆박 전 대통령 내외 영정을 모시고 있는 명부전

비로전 옆으로 명부전(冥府殿)이 있다. 명부전도 다른 전각과 같이 능여조사에 의해 세워졌다. 임란 때 불에 타 현종 9년(1668년)에 팔상전으로 중건됐다가 명부전으로 이름을 바꾸어 달았다.

조선 숙종 때 우담 정시한은 '산중일기'에서 "팔상전을 이층 누각으로 짓느라고 스님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무척 애처로워 보였다"고 기록했다. 당시 팔상전이 지금의 명부전이다. 옛날 화려한 위용은 찾을 수 없고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아한 모습이다. 명부는 도교에서 쓰이는 말이다. 시왕(十王)은 지옥에서 죄의 경중을 판결한다고 하는 10명의 지옥 왕으로 각각 하나의 지옥을 다스린다고 한다. 사람이 죽으면 시왕 앞에 가서 생전에 지은 선악을 심판받는다. 사람이 죽은 뒤 명부전에서 제를 지내면 사후의 길을 편안하게 극락왕생한다고 말한다.

명부전 한쪽에는 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영부인 육영수 여사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다. 뒤쪽에는 박 전 대통령 양친 영정도 함께 자리한다.

박 전 대통령은 생전에 이 사찰의 녹원 스님과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먼저 명부전에 양친을 모셨고 육 여사가 문세광의 총탄에 돌아가시자 명부전에 모셨다. 이후 10'26 사태로 박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함께 모셨다고 전한다. 지금도 설'추석 명절과 8월 15일, 10월 26일에는 사찰에서 제를 지내고 있다.

명부전 안에 닫집을 달아 하나의 별도 공간을 마련하고 박 전 대통령 영정을 모시고 있다. 따로 전각을 지어 모시자는 얘기도 있었다. 하지만 너무 화려하게 하면 오히려 누(累)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박 전 대통령이 최대한 검소하게 하라고 말해 명부전 안에 별도의 공간을 마련했다고 한다.

박 문화관광해설사는 "직지사를 찾은 나이 드신 분들이 '박 전 대통령을 모신 곳이 어디냐'면서 자주 찾는다"고 했다.

◆명부전의 가로형 글씨 현판은 주체성의 산물

명부전 앞에 사명각(四溟閣)이 있다. 사명각은 이곳에서 출가한 사명당을 모신 전각이다. 편액이 박 전 대통령 글씨라는 말은 이미 앞에서 밝혔다. 그런데 사명각 편액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글씨가 쓰여 있다. 대부분 전각들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여진 것과는 정반대다.

중암 도진 스님은 "박 전 대통령이 비록 한자로 사명각을 썼지만 주체성을 지키기 위해 가로형 현판을 써 보냈다"고 설명했다.

또한 편액에 자신의 휘호를 쓰지 않았다. 우국충정의 빛난 업적을 남긴 사명당 같은 성인을 모신 곳의 당호를 쓰면서 감히 휘호를 쓰면 불경스럽다면서 아무런 표식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직지사에는 이 밖에도 관음전, 응진전, 약사전, 황악루, 만덕전, 설법전 등 여러 전각들이 있다. 사적기에는 직지사가 번성할 때는 40여 개 전각'당우 등이 있었다고 하니 옛 가람의 영화와 웅장함을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박용우기자 ywpark@msnet.co.kr

사진'서하복작가 texcafe@hanmail.net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