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반야월

가수 겸 작곡가였던 반야월(半夜月) 선생이 며칠 전 세상을 떠났다. '진방남'이란 예명으로 히트곡 '불효자는 웁니다'를 불렀고, '단장의 미아리고개' '울고 넘는 박달재' '소양강 처녀' '산장의 여인' 등 한국인의 한과 정서를 어루만지는 주옥같은 명곡의 노랫말을 쓴 우리 대중가요계의 산증인이었다. 그가 더욱 친근하게 느껴진 것은 '반야월'이란 이름 때문일 것이다. 반야월은 대구시 동구 안심 지역을 이르는 지명으로 역사적인 사연을 지니고 있다. 태조 왕건이 후백제의 견훤군에게 크게 패하고 이곳을 지날 때 야밤중 중천에 달이 떠 있어서 반야월이라 했다는 것이다. '반야월'이란 예명은 둥근 달을 그리는 마음에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대중가요는 예술가곡의 상대적인 개념으로 '유행가'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의 대중가요는 서양음악의 수입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서양의 민요나 찬송가를 번안하거나 일본 창가의 선율에 가사만 우리말로 바꿔 불렀다. 우리가 창작한 최초의 가요는 1927년에 영화 삽입곡으로 나온 '낙화유수'다.

최초의 직업 가수는 1932년 신인 가수로 등장한 고복수였다. '타향살이'를 불러 인기를 누린 인물이다. 가수 진방남이 탄생한 것은 1939년 김천에서 열린 신인 가수 선발대회를 통해서였다.

대중가요는 굴곡진 역사의 굽이굽이마다 시대의 아픔을 담고 서민의 애환을 대변하며 대중의 각별한 사랑을 받아왔다. 1920년대(사의찬미-황성옛터), 1930년대(눈물젖은두만강-애수의소야곡-번지없는주막-나그네설움), 1940년대(찔레꽃-신라의달밤-비내리는고모령), 1950년대(전선야곡-전우야잘자라-이별의부산정거장-단장의미아리고개-대전부루스), 1960년대(맨발의청춘-동백아가씨-하숙생-갈대의순정-사랑은눈물의씨앗), 1970년대(아침이슬-왜불러-모닥불-님과함께-물레방아도는데-돌아와요부산항에-오동잎-사랑만은않겠어요-그때그사람), 1980년대(창밖의여자-잊혀진계절-아파트-J에게-바람바람바람-애모)에 이어 2000년대에는 지오디의 '거짓말'이 힙합(hiphop) 문화를 연다.

k-pop이 전 세계에 한류(韓流)를 선도하는 시대다. 그러나 말 못할 사연들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슴에서 반야월을 지울 수는 없을 것이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