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가격 올라도 소비가 늘다니…'기름값의 역설'

정부가 고유가 대책으로 내놓은 알뜰주유소가 생각보다 싸지 않은 휘발유 가격에 소비자들의 반응이 썰렁하다. 계속해서 오르는 기름값에 추가 대책도 나오고 있지만 정유업계와 소비자단체들은 유류세 인하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정부가 고유가 대책으로 내놓은 알뜰주유소가 생각보다 싸지 않은 휘발유 가격에 소비자들의 반응이 썰렁하다. 계속해서 오르는 기름값에 추가 대책도 나오고 있지만 정유업계와 소비자단체들은 유류세 인하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줄줄이 이어지는 고유가 대책에도 끄떡 않는 기름값, 언제 안정되나.'

휘발유 가격이 연일 사상 최고가를 기록하며 고공행진하고 있다. 대구지역 보통휘발유 판매가격이 지난 2월 2일 이후 56일 연속으로 상승했다. 기름값 상승에도 석유 소비량은 오히려 늘어나 소비자들이 '고유가 불감증'에 빠져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의 각종 고유가 대책도 이어지고 있지만 소비자들과 정유업계에서는 효과가 없을 것이란 부정적 반응을 내비치고 있다.

◆휘발유값 2천원 넘어도 편리하니깐 자가용 이용한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29일 현재 대구지역 보통휘발유 판매가격은 ℓ당 2천33.37원으로 56일째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연초 1천922.20원으로 출반한 휘발유 가격이 석 달 만에 111.17원(5.8%)이나 올랐다.

자동차용 경유도 ℓ당 1천847.33원으로 전일보다 1.6원 소폭 하락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휘발유 50ℓ를 주유한다고 가정했을 때 연초에는 9만6천110원이면 주유가 가능했지만 현재는 10만1천668.5원으로 5천원 이상의 비용이 추가로 드는 셈이다.

이처럼 자동차 운전자들의 기름 가격 부담은 크게 늘었지만 소비는 오히려 늘었다.

올 2월 휘발유 소비량은 567만5천 배럴로, 전년 동월(541만2천 배럴)보다 4.4% 증가했다. 2010년 2월(514만7천 배럴)에 비해서는 10.3%나 늘었다.

2월까지 휘발유 누적 소비량도 1천149만7천 배럴로 전년 동기(1천85만 배럴)에 비해 6.0% 증가했다.

경유와 액화석유가스(LPG) 등 석유제품의 소비 역시 증가했다. 수송용 경유 소비량은 2월 841만2천 배럴로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6.3% 증가했고, 자동차용 LPG 소비 역시 전년 동월에 비해 5.5% 늘어난 357만6천 배럴을 기록했다.

올 2월 휘발유 소비량 증가는 설 연휴가 1월에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의외의 결과다. 지난해는 설 연휴가 2월이라 장거리 이동 수요가 많았지만 올해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

전문가들은 기름값이 올라도 자가용 이용의 편리함 때문에 휘발유 소비량이 줄기는 어렵다고 설명한다. 게다가 오랫동안 고유가가 지속되면서 소비자들이 비싼 기름값에 무덤덤해진 것도 원인 중 하나다.

소비 통계의 경우 실제 소비자가 구입한 휘발유 양이 아닌 주유소가 사들이는 양이기 때문에 유가 오름세 지속으로 일부 사재기 수요도 있었을 것으로 파악된다.

◆소비자단체, 정유업계는 유류세 인하 주장

고유가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알뜰주유소'다. 유통구조 개선으로 ℓ당 100원 싼 휘발유를 판매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정작 문을 연 알뜰주유소는 소비자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대구에는 4곳의 알뜰주유소가 문을 열었지만 이들의 휘발유 평균판매가격은 2천10.5원으로 대구 평균인 2천33.37원보다 22.87원 싼 데 그쳤다. 오히려 알뜰주유소보다 기름값이 저렴한 일반 주유소들도 등장해 소비자들은 알뜰주유소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계속해서 치솟은 기름값에 정부는 3월 말까지 전자상거래 시장을 개설하고 주유소에서 혼합석유판매를 20%까지 판매할 수 있는 대책을 서둘러 추진하기로 했다. 전자상거래를 이용하는 판매자에게는 세제 혜택(공급가액의 0.3%)을 줄 방침이다.

하지만 소비자단체와 주유업계에서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는 유류세 인하에는 여전히 부정적 반응이다.

한국납세자연맹이 유류세 인하 서명운동 참여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연봉 2천만원 수준의 근로소득자가 연소득의 13%를 유류세로 부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맹은 "2010년 기준 유류세 세수는 국세 수입의 14%인 25조원을 차지했는데 이는 근로소득세 16조원보다 9조원이나 많은 액수"라며 "기름값의 절반이 세금이라 근로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근로소득세보다 더 많은 유류세를 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조만간 휘발유값 상승세가 꺾일 전망이다. 국내 유가에 영향을 미치는 국제 유가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유 추가 생산 발표와 몇몇 국가들의 전략비축유 방출 의지로 급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29일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5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배럴당 102.84달러, 영국 런던 ICE선물시장에서 북해산 브렌트유는 122.78달러, 중동산 두바이유는 121.57달러로 전날보다 각각 2.57달러, 1.52달러, 0.50달러 하락하면서 장을 마감했다.

미국은 영국, 프랑스 및 일본과 전략 비축유 방출 문제를 협의하고 3개월 안에 실행할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제 유가가 하락한 것으로 분석된다.

29일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 추가 생산을 밝힌 것도 유가 하락을 부추겼다. 알리 알 나이미 사우디 석유장관은 "사우디는 유가를 낮추고자 행동할 것"이라며 "원유시장이 추가 생산을 원한다면 여분의 생산능력을 가동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김봄이기자 b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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