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얘기 하나 할까요. 옛날에 어떤 영감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호랑이를 만났다 아입니까. 기냥 있으문 물려 죽겠다시퍼 얼릉 나무에 올라갔지요. 호랑이가 밑에서 어흥 카믄서 둥치를 흔들어대자 그만 뚝 떨어졌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게 그만 호랑이 등에 떨어졌다 아이라요. 이거 큰일 났고나, 땅에 떨어지믄 바로 호랑이 입에 들어갈 판이라 영감은 죽을 힘을 다해 등줄기에 매달렸지요. 그라이까 호랑인 호랑이대로 이거 잘못 건디렸구나 해서, 기겁을 하고 달아났다 말입니다. 영감을 그대로 태우고는. 그런데 개뿔도 모르는 사람들은 그걸 보고 이런답니다. 산신령이 호랑이 타고 주유천하를 한다고 그러더래요. 재미있지요."
"......"
오늘을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바쁘고 긴장으로 허우적거린다. 사는 게 곧 전쟁이란 말이 흰소리가 아닐 만큼 세상은 힘들고 가파르다. 은퇴 이후 등산이나 낚시로 소일하는 머리 희끗희끗한 분들을 보면, 잘 모르는 사람들은 '여유로운 말년'을 보낸다고 부러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은 겉으로 보이는 그 여유로움도 젊은 시절 못지않은 치열한 삶의 다른 모습일 수 있다.
이 책은 올해 고희(古稀)를 맞은 저자가 은퇴 이후 한 가장의 평범하고 소박한 삶을 그린 황혼의 에세이 '이것만은 남기고 가야지'에 이어 쓴 두 번째 수필집이다.
지금까지 나는 거의 동물적 본능으로 살아왔다. 호구지책으로 아등바등 살아온 게, 돌아보면 하나에서 열이 모두 그렇다. 남보다 조금 더 가지면 그게 성공으로, 행복으로 생각했던 일에 대부분의 시간을 낭비했다. 아닌 줄 알면서도 그런 일에 매달려 아옹다옹한 게 부지기수였다. 막상 지내놓고 보면 그 결과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 책에는 시간 속에서 어느 한순간도 일탈하지 못했던 한 가장의 회환이 애잔하게 그려져 있다. 떠나가는 사람들과 남아 있는 사람들, 점점 낯설게만 느껴지는 사회의 현상, 부모세대와 자식세대와의 어쩔 수 없이 부닥쳐야 하는 갈등 등. 그래서 그런지 새삼스레 창가에 비친 달빛에 넋을 잃고, 어느 카페의 벽에 걸린 마른 꽃 한 송이를 보고 한숨짓는 그에게는 지나간 것은 다 그리움으로 남았으리라.
저자는 성주 출신으로 잡지사 기자를 거쳐, 공무원, KT대구본부 홍보실장을 역임했다. 매일신문, 조선일보, 영남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각각 당선됐고, 저서로는 문화비평집 '꼴값', '영부인은 직위가 아닙니다'와 수필집 '이것만은 남기고 가야지', 장편 '갓바위에 뜨는 달', 논픽션 '아파트 경비원' 등이 있다. 대구에서 오래 살다 보니 미도다방 마담 이야기와 같은 향토색 짙은 우리 이웃의 모습이 곳곳에 담겨 있다. 308쪽, 1만2천원.
석민기자 sukm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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