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대구 북성로를 배경으로 쓴 장편소설이 출간됐다. 북성로는 일제 강점기 당시 대구에서 가장 번화했던 거리로 상업, 유흥, 문화의 중심지였다. 소설은 불우한 시대, 북성로를 배경으로 각자의 삶을 살았던 인물들의 이야기다.
일본인 나카에 도미주로는 고향에서의 가난을 떨치고 부와 명성을 개척하기 위해 식민지 조선으로 건너온다. 그가 경성(지금의 서울)이나 부산 대신 대구를 택했던 것은 그나마 경쟁이 덜 치열한 도시였기 때문이었다. 당시 경성과 부산은 이미 일본의 대상인들이 많아 자본이 없었던 나카에가 발붙일 틈이 없었다.
나카에 도미주로는 대구에 정착한 뒤, 동아시아 전역으로 팽창하는 일본 제국주의를 등에 업고 승승장구했다. 그는 갖은 노력 끝에 대구 북성로에 미나카이 백화점 본점을 시작으로 한반도 전역과 만주, 일본 도쿄 등에 18개 지점을 거느린 백화점 그룹을 일구었다. (나카에 도미주로는 실존인물이며, 미나카이 백화점은 실재했다. 현재 북성로 대우주차장 자리)
한국인 노태영은 천형처럼 짊어진 식민지 조선인의 운명을 벗기 위해 일본 순사가 되었다. 고향에서 수재로 이름났던 그는 자신의 모든 재능과 성실을 한갓 허섭스레기로 만들어버리는 조선과 조선인을 용서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다며, 악독한 일본 경찰의 길을 걷는다. 그는 "박쥐는 축축하고 어두운 동굴에 거꾸로 매달려 산다. 나를 박쥐 꼴로 세상에 내어놓고,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날개를 활짝 펴라고 요구해서는 안 된다" 며 오직 살기 위해 살아가겠다고 다짐한다.
소설 '북성로의 밤'은 시대의 거대한 흐름에 편승했거나 휩쓸려 가버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화려했던 대구 북성로가 일제 강점기 거대한 시류를 상징한다면, 북성로에서 발버둥치며 살아갔던 노태영과 나카에 도미주로는 거대한 시류에 휩쓸리거나 편승했던 사람들을 대변한다.
시대에 편승했거나 휩쓸렸던 그들은 일본 패망이라는 시대의 운명과 함께 필연적으로 몰락했다. 두 사람은 시대와 함께 몰락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거부했지만, 운명은 그들을 놓아주지 않았다.
후세대인 우리는 식민지에서 승승장구한 나카에 도미주로를 일본 제국주의 침략자의 본질로, 한국인으로 태어나 일본 경찰이 된 노태영을 반민족주의자로 규정한다. 상당히 양보해도 그런 규정은 정당하다.
저자는 "우리는 시대의 억압 속에서도 불굴의 의지로, 자신의 길을 용기 있게 걸어간 선대들의 무덤 앞에 비석을 세우고, 감사의 국화꽃을 놓았다. 그러나 거대한 시류에 쓸려 가버린 사람들, 시대적 억압에 저항하지 못하고 순종했던 사람들을 향해서는 세월이 많이 지난 지금도 경멸의 시선을 던진다. 우리가 던지는 경멸의 시선을 거둘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번은 진지하게 되돌아 봐야 한다. 나약하고 평범했던 사람들, 그래서 시류에 영합했던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주자는 것은 아니다" 고 했다. "나는 불우한 시대, 불행한 공간에 태어나 견디기 어려운 것을 견디며 살아야 했던 그들의 삶을 측은하게 여기고, 할 수만 있다면 그들의 인생을 위로해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일제 강점기 일본 침략자와 친일 조선인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지만 이 소설은 어느 쪽도 성급하게 비난하지는 않았다. 소설은 다만 시대적 상황을 세세하게 묘사하며, 그 세월 속으로 걸어갔던 사람들의 의지와 판단을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대구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인 만큼 대구 곳곳의 거리와 지명, 학교들이 등장해 더 흥미롭다. 354쪽, 1만2천원.
석민기자 sukm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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