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TV영화] EBS 일요시네마 '맨발의 이사도라' 4월 1일 오후 2시 30분

현대무용의 선구자로서 무용에 대한 인식을 통째로 흔들어놓은 1920년대 무용수 이사도라 던컨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다. 어린 시절, 결코 결혼을 하지 않고 아름다움과 진실만을 좇겠다고 맹세한 이사도라는 가족을 이끌고 새로운 삶을 찾아 미국에서 영국으로 건너간다. 힘겨운 생활을 이어나가던 던컨 가족은 어느 귀부인의 눈에 띄게 되고, 그 기회를 발판으로 이사도라는 유럽 사교계에서 각광받는 댄서로 발돋움한다. 그녀가 가는 길마다 그녀의 춤에 영감을 받거나 매혹된 남자들이 줄을 잇고, 이사도라는 연극 연출가 크레이그와 세계적인 재벌 '싱어' 사이에 딸과 아들 한 명씩을 둔다.

하지만 일에만 몰두하던 크레이그는 훌쩍 떠나버리고, 싱어마저 이사도라의 외도에 격분해 사이가 소원해지고 만다. 차 사고로 아이들까지 한꺼번에 잃은 이사도라는 소련의 요청으로 러시아 땅으로 건너간다. 가난과 굶주림에 찌든 소련에서 그녀가 꿈꾸던 댄스학교를 차리기는 어려웠다. 그녀가 대신 얻은 것은 폭력적이고 변덕스럽지만 아름다운 청년 시인 예세닌. 이사도라와 예세닌은 결혼까지 할 만큼 열정적인 사랑을 하지만, 둘에게 공산주의자라는 꼬리표만을 안긴 채 참담하게 끝난 미국 공연 이후로 결국 파국을 맞는다. 그후 어느 바닷가 도시에서 쓸쓸하게 지내던 이사도라는 차 바퀴에 스카프가 걸리는 불의의 자동차 사고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는다.

'사랑과 예술은 서로를 파멸시키는 존재다.' 이 영화 속 이사도라 던컨의 대사다. 하지만 그녀만큼 남자들과 열렬하게 사랑을 나눈 예술가도 드물었고, 그녀만큼 주변 남자들에게 영향을 받으며 크고 작은 인생의 굴곡을 겪었던 댄서도 없었다. 세계적인 갑부부터 흉측한 외모를 한 피아니스트까지, 이사도라는 자신의 눈에 아름다운 남자라면 누구든 마다않고 사랑에 빠졌고 그 사랑은 다시 그녀의 인생을 뒤흔드는 힘이 되었다. 이사도라 던컨은 죽는 날까지 관습과 상식에서 벗어난, 이 세상 그 어떤 것에도 속박당하지 않은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이 영화로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으며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바네사 레드그레이브의 연기가 영화를 잘 살려낸다. 순진했던 소녀 시절부터 죽기 직전의 변덕스러우면서도 감성적이었던 이사도라 던컨의 모습까지 흡인력 있게 묘사해낸다. 여기에 더해서, 이사도라에게 감정이나 환경의 변화가 있을 때마다 대사가 아닌 댄스로 그려낸 연출도 좋은 감상 포인트다. 지극히 사실적인 이야기 전개에 군데군데 몽환적이거나 전위적인 춤이 더해져 130분이 넘는 러닝타임의 지루함을 상쇄한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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