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참 열심히 행복하자

청춘의 피가 뜨거운 것이 아니라 피가 뜨거우니까 비로소 청춘이라고 목청을 돋우곤 한다. 혼자 서고 싶다는 열망과 홀로 서야만 한다는 두려움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모든 것을 꿈꿀 수 있다는 건, 아직은 현실적으로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다는 막막함과 조마조마함이다. 막연하니까 조바심이 일고, 조바심칠수록 자꾸 답답해진다. 내일이란 결국 끊임없는 오늘들이 쌓여서 이어지고 이루어질 뿐이다. 마냥 청맹과니로 청춘예찬 콧노래만 흥얼거리기도, 봄은 왔지만 도무지 봄 같지가 않다고 투정만 늘어놓기에는 짧은 봄날이다. 어둡고도 긴 겨울밤에 깨어 있던 창문으로 봄 햇살이 밝아오듯, 오뉴월 땡볕에 그을린 팔뚝으로 이윽고 넉넉한 가을이 안겨온다. 조금씩 열어가고,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 갈 일이다. 그렇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저 안에 태풍 몇 개/저 안에 천둥 몇 개/저 안에 벼락 몇 개//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저 안에 땡볕 두어 달/저 안에 초승달 몇 날' (장석주의 '대추 한 알')이 달구어졌다 식었다 했을 테니까.

'페임'(Fame, 1980)은 뉴욕의 한 예술전문학교를 배경으로 꿈도 많고 탈도 많은 청춘들이 펼쳐내는 뮤지컬이다. 볼품없이 평범하여 지레 주눅이 든 맹꽁이 도리스와 누구에게서라도 무시당할까 봐 먼저 설레발치는 허풍선이 랄프, 그 사이에 끼인 멍하도록 착한 꺼벙이 몽고메리 등등. 1%에게만 주어진다는 그 명성! 하늘의 별을 따기 위하여 서로 부딪치며 뒤엉키고, 뛰어오르다가 거꾸러지고, 큰소리로 웃고는 소리죽여 운다. 한순간 손안에 넣었다고 생각했던 열광도 물거품처럼 스러지고, 부러움의 대상으로 촉망받던 선배는 어느 날 후줄근한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거침없던 열정들은 냉정한 현실 앞에서 조롱거리가 되고 외면당하기 일쑤다.

"기억했다가 연기에 써먹어야지." 가장 치욕적이고 슬펐던 순간의 감정 앞에서 혼자서 되뇌는 도리스의 모습이 우스꽝스럽도록 눈물겹다. "그대는 아직 나의 최고의 모습을 보지 못했어요. 나에게 시간을 줘요. 나는 내 안에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요. 나는 손으로 달을 잡을 수도 있어요. 당신은 내가 누구인지 모르죠."(영화 주제곡 중에서) 스스로가 먼저 내 안의 많은 것을 믿고, 내가 진정 누구인지를 알아가고 찾아갈 일이다. 맨손으로 달을 잡는 것처럼 막막하고도 무척 힘겨운 길이지만,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그냥 행복했던 어린 시절은 지났고, 마냥 지나간 행복을 되새김질할 늙은 시절은 아직 오지 않았다. 참 열심히 행복하자!

송광익(늘푸른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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