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준희의 교육 느낌표] 논술은 실패한 정책일까?

2012학년도 토요논술학교가 3월 24일 개강했다. 300명 정도의 고3 학생들이 14개 반으로 편성돼 토요일마다 논술수업을 받는다. 그러고 보면 토요논술학교가 시작된 지도 벌써 6년이 지났다.

지난 2007년, 서로 다른 교과목의 선생님들로 결성된 대구통합교과논술지원단은 통합교과형 논술을 어떤 형태로든 학교교육에서 감당해내자는 마음으로 논술교육 동아리 지원과 함께 토요논술학교를 시작했다. 그 당시 언론의 보도를 보면 마치 돌발적 자연재해를 보도하듯이 논술 열풍을 다룸으로써 학부모들의 불안과 근심을 가중시켰다. 논술을 준비하지 않으면 대학을 갈 수 없고, 논술을 배우려면 사교육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자연스런 공식을 심어주기에 한몫을 하고 있는 것이 그 당시 언론 보도들이었다.

그중에서도 화가 나면서 일종의 오기조차 들게 했던 것은 당시 유력 일간지에 서울 유명학원 강사가 기고한 글이었다. '사교육은 된다, 안 된다가 초점이 아니다. 솔직히 누가 더 잘 가르치겠는가. 우리는 일 년 내내 대학 논술 문제에 대해 고민한다. 정작 출제하는 대학교수들도 우리만큼 고민 안 한다. 예시 문항을 철저히 분석하고 학생으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도록 끝없이 질문하고 생각을 글로 표현하게 하는 게 사교육이다.'

학교 논술교육이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단순하게도 바로 이 글에 대한 논리적 비판에서 시작되었다. '일 년 내내 논술 문제에 대해 고민한다'는 말. 학교 교사들이 볼 때 무척 부러운 진술이다. 교사들은 그렇게 고민할 시간이 없다. 담당 교과를 가르쳐야 하고 학생들의 학교생활, 심지어 학교 너머의 생활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진학지도, 각종 보고와 같은 잡무와도 싸워야 한다.

문제는 더 본질적인 지점에 존재한다. 사교육 종사자들이 고민하고 있는 것은 '논술문제'이지 '논술'은 아니라는 점이다. 학생들의 미래를 위해 진정 필요한 교육은 단지 대학입시와 직접 관련된 '논술문제'를 적절하게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가는 현재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과정을 배우는 '논술교육'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예시 문항을 철저히 분석하고 학생으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도록 끝없이 질문하고 생각을 글로 표현하게 하는 게 사교육이다'는 진술도 오류이다. '예시 문항을 철저히 분석'하여 다음해에 출제될 문제를 예상하고 답을 작성하는 방법을 기르는 것이 과연 논술의 전부인가? 이는 대학 논술고사를 위한 마지막 점검일 뿐이다.

가장 큰 오류는 그다음 진술에 있다. 정말로 '학생들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도록 끝없이 질문하고 생각을 글로 표현하게' 한다면 그 교육이 비록 사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정말 바람직한 방향이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가능한가? 정말 그것이 논술고사를 준비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사교육이 알고 있다면 몇백만 원의 수강료를 받으면서 단기 논술 완성이란 강좌 개설은 하지 말아야 한다.

사실 2008년 대입에서 최초로 도입된 '통합교과논술'은 학교수업의 근본을 '지식 암기형 수업'에서 '종합적 사고력 신장을 위한 수업'으로 전환시키려는 의도에서 시작됐다. 당시 정부는 거액을 투자해 전국의 학교논술교육동아리를 지원했으며 이러한 과정은 통합교과논술에 대한 관심 증대와 결합되어 '학교 논술교육 붐'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러나 시행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은 2009년 대입에서 '통합교과논술고사'를 축소하고 수능점수제를 도입하자, 전국의 대다수 고등학교는 수능시험을 준비시키기 위한 '지식암기형 수업'으로 되돌아갔다. 교육 전문가들이 인재의 조건이 달라졌다고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도 인재를 평가하는 방식은 오히려 지난 시간으로 되돌아간 셈이다. 그러면 정말 논술은 실패한 정책일까?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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