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지혜롭게 살아가기

'세상의 처음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은 수많은 사람들이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는 명제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수많은 생을 윤회의 수레바퀴에 엮여져 살아오면서 인연이 어떻게 얽히고 설켜 있는지, 어떤 인연의 매듭이 지어져있는지 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존재의 첫 시작을 알 수 없기에 모든 문제의 첫 번째 원인을 찾아내어 해결한다는 것, 또한 불가능한 일이다.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한 이 세상을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무엇인가. 진리에 가장 근접한 삶은 착각하지 않고 사는 일일 것이다.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실질적인 불교적 수행을 하는 것을 간략히 간추린, '팔정도'라는 핵심적인 수행방법이 있다. 그 첫 번째가 정견(正見·Right Understanding)인데 올바른 견해, 올바른 이해라고 번역을 한다.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현상과 상황들에 대한 올바른 안목, 올바른 이해가 있다면 결코 그 누구도 후회할 일을 벌이지 않을 것이다. 만약 피치 못할 사정으로 올바르지 못한 일을 스스로 하게 되더라도 결코 자신의 삶이 망가지도록 깊게, 오래도록 하지는 않을 것이다. 비유를 하자면 뜨거운 쇳덩이를 맨손으로 잡아야할 어쩔 수 없는 일이 생겼을 때, 뜨겁다는 사실을 알고 잡는 사람과 모르고 잡는 사람 중에서 누가 더 많이 손을 데겠는가.

많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불이익이 발생하면 공공연하게 그 불이익의 책임을 다른 이에게 전가한다. 만약 스스로 책임을 지게 되더라도 수많은 변명과 어쩔 수 없었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분명히 이해해야 하는 것은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은 종교와 관련이 없는 보편적 진리라는 것이다. 불교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설명하자면 인과응보의 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태어남이 없는 죽음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고, 원인 없는 결과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자신 앞에 펼쳐진 현상은 자신과 무관하다는 어리석은 변명을 하지 말아야 한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결과에 대해 올바른 안목과 대처가 필요한 것이지 외면하거나 도피한다고 해서 자신의 과거행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의도적인 정신적-육체적 행위를 했기 때문에 그 결과가 나타나서 세상 사람들이 알게 되는 것이다. 설사 세상 사람들이 모르더라도 자신의 행위를 기억하는 단 한 사람, 바로 자기 자신을 속일 수는 없다. 그래서 자신이 지은 행위에 대한 과보(果報)가 돌아오는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뿐만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까지 불행하게 만든다. 지혜로운 삶이라는 것은 사물과 현상을 있는 그대로, 왜곡됨이 없이 바라보고 정당한 방법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올바로 알면 올바른 행위를 할 수 있다. 반드시 명심해야 하는 일은 '분명하게 아는 것이 아니면 바로 아는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이다.

인오선원 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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