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는 옛 영남의 수도로 불렸다. 번영의 뿌리는 낙동강이었다. 예천 삼강을 지나온 낙동강은 상주에 이르러 넓고 깊어진다. 몸집을 키운 강줄기는 비옥한 토지를 선물했다. 넓은 곡창지대를 기반 삼아 고대 읍성국가들이 자리를 잡았다. 국가들은 성을 쌓고 서로를 넘나들며 패망하거나 더 큰 신국(新國)에 합류했다. '물의 고속도로'였던 낙동강을 따라 교역이 번성했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물길처럼 상주에선 영남학파와 기호학파가 공존하는 열린 학풍이 형성됐다. 강의 아름다운 풍광은 붓끝에서 문학으로 재탄생했다. 삶과 문화를 살찌운 낙동강을 통해 상주는 다시 기지개를 펴고 있다. 낙동강을 중심으로 농업도시에서 관광도시로의 변화를 꿈꾼다.
◆문명을 살찌운 물줄기
상주가 성장한 배경엔 발달한 농업이 있다. 상주는 현재도 '농업 수도'라는 수식을 받으며 삼백(쌀, 곶감, 누에고치)의 고장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농가비율(41.5%)은 물론 곶감과 육계의 생산량이 전국 으뜸이고 쌀과 배의 생산량도 경북 1위다. 상주 농업의 역사를 공검지(공검면 양정리)를 통해 엿볼 수 있다. 김제 벽골제, 제천 의림지와 함께 삼한시대 3대 저수지 중 하나인 공검지는 논농사의 기반인 풍부한 물을 바탕으로 넓은 곡창지대가 형성돼 있었다는 걸 보여준다.
낙동강이 선물한 비옥한 토지에는 문명이 들어섰다. 2001년 국도 25호선 확장공사 중 낙동강과 장천이 만나는 낙동면 신상리에서 구석기 유물 100여 점이 나왔다. 지층분석 결과 20만 년 전 것으로 밝혀져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지로 평가받고 있다.
기원 전후부터는 고대 읍성국가들이 속속 생겨났다. 사벌평야(사벌면 화달리) 일대에 상주 옛 왕국인 사벌국이 존재했다. 고대 삼한의 소국으로 청동기와 초기 철기문화를 지녔다. 삼국사기 석우로전(昔于老傳)에 따르면 '첨해왕(재위 247~261년) 때 신라에 복속된 사벌국이 갑자기 배신해 백제에 귀속하자 우로가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토멸하였다'고 한다.
함창평야(함창읍 증촌리) 지역은 고령가야국의 터전이었다.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함창은 본래 고령가야국이었는데 신라가 빼앗았다'고 전한다. 현재 증촌리에 능이 200m 거리를 두고 2개가 있는데, 제의를 운영하기 위해 지어진 건축물인 재사(齋舍)가 있어서 고령가야국의 왕릉으로 추정된다.
배상수(72) 상주발전범시민연합회 이사는 "과거 낙동강 기준으로 경주의 우도와 상주의 좌도로 영남을 나눌 만큼 번성했던 곳이 상주다"며 "농업을 바탕으로 문명이 발달한 상주의 자부심이자 원동력이 바로 낙동강이다"고 말했다.
◆교역과 문화를 꽃피운 강
상주는 낙동강을 통한 교역이 활발했다. 조선시대 상주 낙동강에는 크고 작은 나루 10여 개가 있었다. 그 가운데 현재 낙단교 아래 있던 낙동나루는 원산, 강경, 포항과 함께 조선 4대 수산물 집산지로 꼽혔다. 부산 구포에서 소금과 수산물을 가져온 나룻배들이 쌀, 목재, 석탄 등을 싣고 다시 남쪽으로 내려갔다. 영남 각지에서 조세로 바친 곡식도 낙동나루에 모였다. 이 세곡(稅穀)은 다시 육로를 통해 문경새재를 넘어 한양으로 운송됐다.
상주는 열린 학문의 공간이었다. 이를 대표하는 곳이 상주 최초의 서원인 도남서원(도남동)이다. 1606년 세워진 도남서원에는 정몽주, 김굉필, 정여창, 이언적, 이황 등의 위패가 봉안돼 있다. 제1신위는 바로 고려 말 학자인 정몽주. 이는 왕조를 따지지 않고 학문을 익히려는 열린 학풍의 한 면을 보여준다. 상주 학문의 가장 큰 어른인 우복 정경세는 도남서원 창건의 중심인물이었다. 이황의 영남학파였던 우복은 사위로 이이의 기호학파 사람인 송준길을 맞아들였다. 당색을 떠나 학문적으로 교류했던 우복의 소통정신을 엿볼 수 있다.
낙동강은 시와 가사문학을 낳았다. 1196년 백운 이규보는 상주 낙동강에 배를 띄우고 시회(詩會)를 열었다. 이후 1862년까지 666년 동안 밝혀진 것만 56번의 시회가 열렸다. 1471년 점필재 김종직, 1534년 퇴계 이황 등 당대 내로라하는 학자와 문인들이 상주 낙동강의 아름다움을 붓끝에 담아 노래했다. 송강 정철의 가사문학을 이어받은 이재 조우인은 '매호별곡'을 통해 낙동강의 절경을 가사문학으로 남겼다.
김진형 상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상주의 역사문화는 낙동강과 깊은 관련이 있다"며 "물길을 통해 사람들이 오가며 교역했던 개방적인 분위기 속에서 학문에 대한 자세도 열려 있었다"고 설명했다.
◆농업도시에서 관광도시로
상주는 낙동강을 발판삼아 관광도시로 변화하려 한다. 상주시는 '낙동강관광의 중심도시', '스토리 관광의 1번지', '녹색 자전거 관광의 제1의 도시' 등을 비전으로 제시했다.
그렇지만 주변도시에 비해 관광도시로서의 경쟁력이 부족하다. 특히 상주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대표 관광 이미지가 없다. 안동은 하회마을과 하회탈, 예천은 삼강주막과 회룡포, 문경은 문경새재, 봉화는 자연휴양림, 영주는 부석사와 선비촌 등 인접한 다른 지역에 비해 상주만의 관광 브랜드가 미흡하다.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상주시는 발전전략을 수립했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상주의 대표성을 지닐 수 있는 자원을 개발하겠다는 것. 정부 예산사업의 형태와 규모를 고려한 사업아이템을 발굴, 정부 예산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무엇보다 지역주민 참여형 관광개발에 비중을 두고 있다. 관 중심의 일괄적인 개발이 아닌 지역 주민이 참여해 지역민에게 이득이 되는 관광도시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김용묵 상주시 새마을관광과장은 "상주가 관광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선 인지도가 높은 낙동강 경천대, 상주보 등 대표 브랜드를 키워야 한다"며 "미래의 관광 경향, 정부 정책 방향, 장래 성장성을 고려해 대표 관광상품을 집중 육성하겠다"고 말했다. 또"자전거, 승마, 이야기 축제, 각종 설화 등 다양한 이야기 자원을 발굴해 특색 있는 스토리텔링 콘텐츠를 만들 계획이다"고 했다. ]
글'사진 서광호기자 koz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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