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 20년대 미국 프로야구에서 활동한 월터 크레맨트 핍(1893~1965)은 야구 용어 사전에도 이름을 남긴 인물이다. 월리 핍(Wally Pipp)이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그는 당시 뉴욕 양키스의 주전 1루수로 10년 넘게 뛰며 자리를 굳혔는데 1925년 6월 1일은 그에게 운명의 날이었다. 두통 때문에 하루 결장하자 메이저리그 데뷔 3년차의 후보 선수가 대신 출전하면서 야구 역사가 바뀌었다. 이튿날부터 졸지에 더그아웃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신세가 된 핍은 그해 시즌 종료 후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됐고 3년 후 결국 은퇴했다.
이후 '월리 핍'은 주전 선수가 컨디션 등의 이유로 선발 명단에서 빠질 때를 일컫는 용어로 자리 잡았다. 공교롭게도 1루수 글러브를 대신 낀 선수가 바로 야구사에 길이 남은 '철마' 루 게릭(1903~1941)이다. '루게릭병'으로도 널리 알려진 그는 뛰어난 기량으로 17시즌 동안 통산 타율 3할4푼의 경이적인 기록과 함께 무려 2천130경기 연속 출장 기록을 세우며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선수다.
이런 상황은 스포츠에서뿐 아니라 어디서든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더 뛰어난 능력과 열정을 가진 인물이 경쟁을 통해 언제든 주전 자리를 꿰찰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주전에 막혀 영원히 후보 자리를 강요받는 환경이나 사회 분위기라면 새 역사는 쓰일 수 없고 발전도 경쟁력도 기대할 수 없다.
선거도 마찬가지다. 특정 정당을 향한 몰표는 발전보다는 무사안일과 정체를 부른다. 대구경북 정치판이 한번 자리 차고앉으면 새 인물이 진입하기 어렵고 야당 후보는 더욱 힘든 구조가 된 것도 유권자 스스로 '주전 논리'나 '텃밭 논리'의 함정에 빠져서다. 이러니 '잡은 물고기 먹이 줄 일 있느냐'며 배짱 튕기고, 야당은 야당대로 해보나 마나 미리 포기하는 지역으로 낙인돼 존재감마저 희미해진 것이다. 이번 총선 출마자들의 알맹이 없는 공약이나 맥빠진 선거운동도 모두 이런 까닭 때문이다.
제19대 총선이 불과 엿새밖에 남지 않았다. '한 번 주전은 영원한 주전'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지역 정치판의 인식과 구도가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월리 핍이라는 용어가 대구경북 정가에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음을 이번 선거에서 보여줘야 한다.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이 제2의 루 게릭 역사를 쓰게 될지 또 누가 아는가.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포항 찾은 한동훈 "박정희 때처럼 과학개발 100개년 계획 세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