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니하오 통신] (72)청명절(淸明節)

"무덤 위에 계란껍질 놓아 새 희망 기원"

청명은 춘분과 곡우 사이의 절기로 양력으로는 4월 5일 무렵이다. 중국에서는 '칭밍제'(淸明節)라고 부르며 2천500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 전통명절이다.

이때가 되면 성대한 제례의식을 통해 중화민족의 시조와 황제를 기리고 전국 곳곳에는 성묘 차량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중국은 농업 국가로 기후가 바뀌는 청명절을 중시하며 3일간 연휴를 즐긴다. 지금은 청명절에 단순히 조상에게 제를 올리거나 선인들을 기리는 의미를 넘어, 봄철 야외 소풍을 나가는 등 자연과 가까워지는 날로 바뀌고 있다.

중국에는 한족을 비롯해 묘족, 리족, 수이족 등 24개 소수민족이 청명절을 쇠고 있다. 또한 한족과 일부 소수민족들은 청명절에 성묘하는 풍습을 가지고 있다. 옛 풍속에 따르면 성묘 때 사람들은 술과 음식, 지전(紙錢) 등을 준비하는데 가지고 온 음식을 조상 묘에 바치고 나서 지전을 태운다. 그 다음 봉분에 새 흙을 올리고 거기에 파란 싹이 움튼 나뭇가지 몇 개를 꺾어 꼽아놓고 절을 올리며 제를 지낸다. 마지막으로 술과 차린 음식을 그 자리에서 전부 음복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은 '청명'이라는 시를 통해 이런 문구를 남겼다. '청명절에 부슬부슬 봄비가 내리고, 산허리를 오르는 나그네의 발걸음이 고단해라. 술 빚는 집이 어드메뇨 물었더니 목동은 멀리 행화촌을 가리키네.'(淸明時節雨紛紛 路上行人欲斷魂 借問酒家何處有 牧童遙指杏花村)

청명절의 또 다른 풍습으로 사람들은 이날 취사를 금하고 찬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한다. 이는 '청명절'과 '한식절'의 화합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성묘는 원래 한식절의 주요 행사 내용이었다. 한식절은 2천600여 년 전 진문공(晉文公)이 충신 개자추(介子推)를 애도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그 후, 한식과 청명이 하루 사이로 취사 금지의 성묘 풍습이 점차 청명 행사에 합쳐져서 치러지게 되었다. 그래서 한식이 청명의 별칭으로 불리고 청명절의 주요 풍습으로도 변모했다.

또한 성묘할 때 삶은 계란을 묘비에 쳐서 깨뜨린 다음 껍질을 무덤 위에 얹어 놓기도 한다. 이는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나오듯 새로운 인생을 맞이하고, 자손이 널리 이름을 떨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상하이에서는 전통음식인 '칭퇀'(靑團)을 즐긴다. 칭퇀은 귀리 잎이나 쑥 즙 등으로 찹쌀가루에 반죽한 뒤 팥소를 넣어 빚은 떡이다. 우리의 망개떡과 비슷하며 쫄깃쫄깃하고 고소하다. 중국의 남부 지방에서는 수많은 양잠민들에게 에워싸인 '누에 아가씨'가 연도에 누에고치를 뿌리는 '누에고치 축제'와 누에 신(神) 제례행사를 펼치기도 한다.

청명에 관한 속담도 재미있다. 흔히 우스갯소리로 하는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는 한식과 청명은 하루 사이이므로 하루 먼저 죽으나 늦게 죽으나 별 차이 없다는 말이다. 또 '청명에는 부지깽이를 거꾸로 꽂아도 산다'는 말은 청명이 되면 생명력이 왕성해져 웬만하면 만물이 모두 살아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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