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가격 내리지 않는 수입 제품, FTA는 왜 했나

자유무역협정(FT)을 하는 이유의 하나는 소비자 후생(厚生) 증진이다. 관세의 인하'철폐를 통해 소비자가 싼값에 수입 물품을 구입하도록 함으로써 국내 공급자의 독과점, 가격 담합으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한'유럽연합(EU) FTA, 한'미 FTA가 발효된 지 상당 기간이 지났지만 이런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FTA 발효로 관세는 내리거나 없어졌지만 수입 제품의 가격은 그대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관세 인하 폭이 큰 13개 품목의 가격을 조사해 보니 절반이 넘는 7개 품목의 가격이 FTA 이후에도 전혀 내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가격이 내려도 관세 인하 폭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우리 소비자가 FTA 덕을 전혀 보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FTA 효과에 대한 정부의 홍보를 거짓말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수입 업자의 농간일 가능성이다. 수입 업자가 대리점들에 가격을 내리지 말라고 강요하는 경우다. 과거에도 같은 사례가 있었다. 칠레 와인이다. 2004년 한'칠레 FTA가 발효됐지만 한국 소비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칠레 와인을 마셔야 했다. 와인 유통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소수의 유통 업자들이 가격을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입차 업체들은 '×배짱'까지 부렸다. 지난해 7월 한'EU 발효로 자동차 관세가 내렸지만 수입차 업체는 판매 가격을 더 올렸다.

두 번째로 복잡한 국내 유통 구조 때문에 관세 인하 효과가 상쇄되어 버린다는 점이다. 지난달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국내 250개 유통 기업 중 31%는 한'미 FTA 이후에도 수입품 가격을 내리지 않겠다고 했으며, 가격을 내리겠다고 한 업체도 75%는 판촉비와 복잡한 유통 구조를 이유로 관세 인하분 중 일부만 가격에 반영하겠다고 했다. 결국 FTA에 따른 혜택은 수입 업자와 유통 업자들이 '사유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정부가 FTA 효과를 확산시킬 사전 준비도 하지 않은 채 서둘러 FTA를 체결했다는 불만을 낳을 수 있다. 소비자가 이득을 보지 못한다면 굳이 FTA를 할 이유가 없다. 다급해진 정부는 FTA 이후에도 가격 변동이 없는 품목에 대해 유통 단계별 가격 결정 구조를 추적해 가격 인하를 유도하겠다고 했지만 사후 약방문이란 비판을 면할 수 없다. 늦었지만 정부의 면밀한 대책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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