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성익의 가슴 뛰는 세상] 사람도서관 In 대구

10대 때부터 계속된 고민 그리고 방황은 나중에 자살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지만 극복하고 싶었고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은 마음에 무작정 책을 읽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책을 읽고 인상 깊다면 그 작가를 만나러 가고 특별한 장소가 있다면 그곳으로 떠나는 식으로 전국 그리고 세계로 여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부지런히 발품을 판 지도 올해로 11년째가 됩니다. 특별한 치료 프로그램이나 상담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길 위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 자체가 새로운 동기를 찾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여행 중에 특별한 순간이 있다면 바로 '떼제 공동체'에서의 이야기입니다. 전 세계의 10, 20대 친구들이 모여 함께 기도하고 공동체 생활을 하는 그곳에서 만난 한 여행가로부터 한 권의 책을 빌리게 되었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보았던 책이 바로 '나는 런던에서 사람책을 읽는다'였습니다. 지금 런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사람도서관'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저자는 우리 사회의 오해나 편견을 줄이기 위해서 우리가 평소에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미혼모, 장애인, 성 소수자 등)을 사람책으로 섭외하고, 그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공유하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다고 전했습니다. 강연과 상담과는 조금 다른 방식. 많은 다수가 참가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사람들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딱딱한 지식보다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전하는 시간을 가지는 행사인 셈입니다. 책을 덮고 나서 떠오른 생각이 사람도서관 아이템이라면 내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새로운 동기를 가졌던 경험을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바로 여행길에서 만났던 사람들, 주변 모든 지인들에게 권유를 했습니다. 이런 프로그램이 있는데 한번 함께 진행을 해보자고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지난해 4월 첫 사람도서관을 열게 되었고, 대학 다닐 때보다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처음엔 아주 작게 시작한 행사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셨고 혈연'지연'학연의 방식이 아닌 다양한 영역의 사람들을 만나는 장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행사가 끝난 뒤에도 지속적으로 만나고, 몇몇 사람들은 함께 여행을 떠나기도, 또는 새로운 인생길을 시작하는 계기로 삼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한 지인으로부터 이것으로 업(業)을 삼아보라는 권유를 받았고, 저는 사회적기업이라는 형태로 시작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바로 지난해 가을부터 저는 사람 만나는 일을 직업으로 삼게 된 것입니다.

사람도서관 1회 첫 신청자, 사람도서관 단골손님, 이런 관계 속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친구들에게 운영진으로 험께하기를 권유하게 되었고 적은 인원이지만 지금은 작은 팀도 꾸려 사업이라는 형태를 만들어 가는 과정입니다. 사람도서관의 콘셉트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남들에게 들려줄 만한 가치 있는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라는 발상입니다. 특별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의 일상 경험 이야기들을 풀어낼 만한 장을 만들려고 저는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단순한 일상, 경험의 이야기도 함께 나누는 과정에서 의미가 발생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사람도서관 사람책의 전문성은 바로 그 경험을 한 당사자가 자기 목소리로 이야기를 전한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현장감 있는 전달력이 구독자로 하여금 더 많은 공감과 이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변화를 생각할 때 우리는 항상 혁신, 새로운 커리큘럼, 거대한 자본 투입, 전면 교체 등 강경한 단어들을 생각합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사업을 진행하면서 느낀 것이 있습니다. 거대 자본이 투입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변에 있는 자원과 이야기들을 이끌어 내는 것만으로도 많은 다수가 만족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미 존재하는 주변의 역량으로도 새로움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볼 수 있었습니다.

조금은 어설프고 느린 방식이지만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관계들을 지속시켜 나감으로써 여기 살고 있는 사람들이 행복하다면 대구도 살기 좋은 도시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아직 꿈만 같은 이야기이지만 시도해 볼 만한 충분한 가치는 있다고 봅니다. 사람도서관의 이야기들은 지금도 만들어지고 앞으로도 이어질 것입니다.

박성익/네트워크기획 '아울러' 링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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