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진한 커피향, 이국적인 음식…앞산자락 '대구의 몽마르트르'

봄바람 따라 걷고 싶은 앞산카페거리

거리는 생명과 같다. 새로 태어나 성장했다가 쇠퇴해 사라진다. 또 어떤 곳은 쇠퇴했다가 다시 살아나기도 한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니고 계획을 세운 것도 아니지만 거리의 모습이 세월에 따라 자연스럽게 바뀐다.

한때는 대구 최고의 부촌(富村)으로 불렸던 대구 남구 대명 9동. 요즘 이곳은 커피향 가득하고 이국적인 음식을 내놓는 카페거리로 새롭게 변신했다. 언제부턴가 예쁘장한 카페가 하나 둘 자리 잡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들까지 가세하면서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 덕분에 쇠퇴하기 시작했던 앞산 지역 상권도 다시 조명되고 있다. 시민들 역시 이런 앞산 거리의 변화가 반갑다. 독특한 맛과 멋을 가진 이색적인 카페와 레스토랑이 밀집하면서 새로운 휴식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주택가 카페거리

앞산네거리에서 현충로를 따라 앞산순환도로 방향으로 올라가다 보면 첫 번째 작은 네거리(모퉁이에 소방서와 대명 9동주민센터가 있다)를 기점으로 풍경이 확 바뀐다. 그 이전에는 간판 색깔마저 빛이 바랜 낡은 슈퍼마켓과 세탁소, 식당들이 즐비하다 갑자기 외국의 어느 유명 거리에라도 온 듯 세련되고 모던한 모습의 건축물들이 시선을 잡아끄는 것이다. 크고 작은 가게들이 저마다의 색깔을 뿜어내며 어우러지면서 알록달록 레고 블록들이 예쁘게 자리 잡은 것처럼 조화로운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앞산네거리에서 앞산순환도로로 올라가는 현충로 일대와 남명네거리를 중심으로 우측으로 뻗어나간 대명남로 주변 일대가 '앞산 카페거리'다. 1970, 80년대에 이곳은 좋은 집들이 몰려 있어 대구의 부촌으로 불렸다. 하지만 주거문화가 단독주택에서 아파트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다. 동네의 옛 명성이 완전히 사라지는가 싶더니 최근 들어 지역의 명소로 부활하고 있다.

현재 자리 잡고 있는 가게들만 해도 50여 개에 이른다. 지난해에만 20여 곳이 새롭게 문을 열었다. 이곳에는 톡톡 튀는 개성이 넘쳐난다. 비교적 초창기에 자리를 잡은 남명네거리 인근의 레스토랑 '튜즈데이 모닝'(Tuesday Morning)은 최근 리모델링 공사를 마쳤다. 원래 패션디자이너 변상일 씨가 숍 형태의 패션카페로 문을 열었다가 후에 다른 사람이 인수해 레스토랑으로 운영되고 있는 곳이다. 508번지에 자리 잡은 '508Avenue'는 영남대 건축과 심재익 교수가 설계한 작품으로 갤러리와 카페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별도의 세미나 공간도 마련돼 있으며, 최근에는 다양한 메뉴를 정리해 샌드위치 전문점으로 특색을 살렸다.

큰길을 따라 자리 잡은 가게들은 메뉴는 물론이고 인테리어까지 눈에 띈다. 커다란 커피포트 조형물이 눈길을 잡아끄는 '더 브릿지'(The Bridge)를 비롯해, '코로로'는 홍차로 유명한 곳이며, '블루 오븐'(Blue Oven)은 앙증맞은 컵 케이크로 블로거들 사이에 입소문이 난 명소다. 그 외에도 테라스가 예쁜 '빈스마켓'(Beans Market), 공정무역 커피만을 사용한다는 '라이크 어 스타'(Like a star), 핸드드립 커피와 수제 초콜릿을 내세운 '폴인커피', 문을 연 지 이제 겨우 일주일 남짓 된 프랑스와 이탈리안 요리 레스토랑 '엑상 프로방스'(Aix-en Provence) 등이 자리를 잡고 있다.

◆독특함을 무기로

카페 거리가 지역 명소로 알려지면서 이제는 큰 도로변뿐 아니라 골목까지도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속속 자리 잡고 있다. 남명초등학교 쪽으로 들어가는 작은 골목길에는 40년 된 주택의 마당을 그대로 살려낸 '도도맨숀'과 스테이크로 우명한 '몽중헌' 등이 발길을 사로잡는다.

이색적인 콘셉트의 매장도 여러 곳이다. 레드를 콘셉트로 내세운 예쁜 인테리어의 '아트 카페 마리'는 마치 갤러리에 앉아 커피 한잔을 하는 느낌을 준다. '커피 마시는 고양이'라는 이름의 카페는 이름답게 고양이를 콘셉트로 한 아기자기한 인테리어와 함께 실제 고양이들을 만나볼 수 있는 재미난 공간이다. 또 웨딩 갤러리 '아쌈'(Assam)은 1층은 커피숍, 2층은 웨딩 상담을 하는 곳으로 여성 고객들을 위한 미니 뷰티네일박스 등을 비치해 놓은 세심함이 매력적이다. '콘스탄스 플라워'는 플로리스트가 운영하는 플라워 카페로 차를 한잔 마시면서 꽃과 화분을 구경할 수 있는 싱그러운 공간이다.

하지만 이 지역이 '카페 거리'로 이름을 얻으면서 최근에는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들이 하나 둘 자리를 비집고 들어오고 있다. 특히 남명삼거리를 중심으로 목이 좋은 공간에는 프랜차이즈 브랜드들의 '커피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슬립리스 인 시애틀' '다빈치' '카페베네' '엔제리너스 커피'를 비롯해 최근에는 '스타벅스'까지 가세했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유동 인구가 늘어 상권이 확장된다고 반긴다. 하지만 대부분 가게 주인들은 독특한 색채로 자생적으로 조성된 거리에 대형 프랜차이즈가 영역을 확장하면서 특색 없는 거리로 전락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서울의 유명한 홍대 앞, 신사동 가로수길, 삼청동 등의 카페 거리들이 대형 프랜차이즈의 진입으로 원래의 특색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카페 거리가 형성되면서 부동산 가격이 함께 들썩여 임대료 부담이 늘어난 것도 고민거리다. 심지어 5, 6년 전 매매가가 10억원이었던 대로변 단독주택(330㎡)이 2, 3년 전에는 20억원으로 올랐고, 최근에는 26억원까지 치솟을 정도로 급등하고 있다.

김영일 남구도시만들기지원센터 사무국장은 "작고 특색 있는 가게들이 자본의 힘을 앞세운 대형 매장에 밀려나고, 임대료가 비싸진다는 불만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아직까지는 나만의 색깔을 내세운 오너쉐프들이 운영하는 카페와 레스토랑이 힘을 얻고 있기 때문에 발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밝혔다.

◆발길 머무르는 곳으로 만들어야

'카페 거리'가 단순히 카페가 많다고 생긴 이름이 아니다. 주민들의 의견수렴 과정을 거친 공식 명칭이다. 지난 2010년 주민들의 제안을 통해 가장 많은 사람들이 선호한 '앞산 카페 거리'가 정식 명식으로 선정된 것.

지자체에서는 이곳을 앞산 맛자락길과 연계한 지역의 관광자원으로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올 9월까지 모두 15억원을 들여 앞산 카페 거리를 시민들이 걷기 좋은 '녹색길'로 조성해 더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로 발전시키겠다는 것. 곳곳에 야생화를 심고 옹벽은 덩굴나무나 장미 등 친환경 소재로 덮어 향기와 멋이 넘치는 길로 만들고, 담장을 허물어 탁 트인 경관을 조성하는 한편, 인도블록을 정비하고 작은 포켓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그리고 방문객들의 편의를 위해 쉼터와 각종 편의시설, 노면 주차장을 확보하고 표지판도 확충한다. 이미 2007년에는 카페 거리의 디자인 개선을 위해 하수도 및 인도정비 사업을 끝냈으며, 벚꽃거리의 야간경관 조성을 위해 수목 135그루, 가로등 40개 등을 설치했다.

남구청 이진숙 도시경관과장은 "앞산은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탐방로와 역사유적, 생태, 먹거리, 즐길거리가 함께 어우러진 휴식공간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은 곳"이라며 "자생적으로 생겨난 문화를 좀 더 경쟁력 있는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지자체 차원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곳에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가게 주인들도 적극 나서고 있다. 도시학교 운영을 통해 갖가지 아이디어를 내놓으면서 좀 더 나은 카페 거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김 사무국장은 "앞산이라고 하면 많은 대구시민들이 차를 가지고 가야 하는 곳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주차 문제 해결이 관건"이라며 "이 때문에 현충로역을 중심으로 걸어서 돌아볼 수 있는 투어 코스를 만들고, 먹고 마시는 거리에서 벗어나 보고 즐길 수 있는 재밋거리를 만들기 위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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