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키

1970년대 중반 과테말라 내전으로 약 100만 명의 마야계 인디오가 미국으로 이주했다. 당시 이들의 평균키는 165㎝였다. 인류학자 배리 보긴은 이들 중 이주 당시 어린이였던 사람을 대상으로 2000년에 키를 쟀다. 그랬더니 1970년대 초에 쟀을 때보다 무려 10㎝가 더 커져 과테말라 내 스페인계 주민의 평균 키와 같아졌다. 이유는? 과테말라보다 미국에서 더 잘 먹었기 때문이다. 이는 키 차이가 유전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불평등과도 깊은 연관이 있음을 암시한다. 스페인계 주민은 마야 인디오보다 훨씬 더 잘산다.('키는 권력이다' 니콜라 에르팽)

미국인과 유럽인의 키 차이도 이를 뒷받침한다. 미국질병관리센터 자료(2001)에 따르면 미국인의 키는 175.5㎝(남)-162.6㎝(여)였다. 반면 스웨덴, 덴마크, 독일, 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의 평균 키는 이보다 훨씬 컸다. 덴마크(2000)가 185㎝-172㎝, 스웨덴(2000) 177.7㎝-164.6㎝, 독일(2004) 180.2㎝-169.0㎝였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분배 시스템이 미국보다 더 잘돼 있다는 점이다. 결국 이들 국가 국민이 미국인보다 더 평등한 건강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런 차이가 생겼다는 게 학자들의 진단이다.

문제는 키의 차이가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결혼, 소득, 승진 등에서 작은 키는 불리하다는 조사는 널려 있다. 2001년 프랑스의 부부생활환경 조사에 따르면 키 큰 남자가 더 자주, 더 일찍 배우자를 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3년 영국 BBC방송 조사에 따르면 키가 1인치(2.54㎝) 클 때마다 연평균 임금은 780달러 올라갔다. 스웨덴의 경우 키가 5㎝ 커지면 자살 위험이 9% 낮아졌다. 결론은? 사회적 불평등이 키 차이를 낳고 그것이 다시 사회적 불평등을 확대한다는 얘기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서울시 초'중등생의 키 차이를 조사했더니 저소득 남학생은 평균보다 최대 2.1㎝, 여학생은 4.7㎝나 적었다고 한다. 키 큰 사람이 모든 면에서 유리하다는 서구의 통계 조사가 거짓말이 아니라면 이들의 미래도 (통계적으로)그리 밝지 않을 것이다. 이는 국가가 시정할 몫이다. 저소득층 아이들을 국가가 더 잘 먹여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아이들 밥 먹일 재원은 무한정이 아니다. 그렇다면 못사는 집 애들부터 잘 먹이는 게 사리에 맞다. 전면 무상 급식이 포퓰리즘 소리를 듣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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