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의정사(議政史)에는 선거를 치를 때마다 나오는 뒷말이 하나 있다. '손가락을 잘라버리겠다'는 말이다.
순진하게 속았지만 뒤늦게나마 오판을 깨닫는다는 후회의 뜻도 되고 앞으로는 바보 같은 투표는 않겠다는 다짐의 핑계도 된다. 따라서 '손가락…' 표현은 과장된 수사라 치부하고 버릴 말만은 아니다. 문제는 입으로만 '손가락…' 하면서 바보 같은 투표를 '반복'하는 데 있다. 내일모레면 또 투표를 한다. 이번에도 몇 달, 몇 년이 지난 뒤에 또 손가락 잘라야겠다는 말이 나올 것인가. 당장 우리 집안부터 '변화의 정치' '경쟁의 견제 정치' '경제 회생의 기회'라는 지역 어젠다를 놓고 또 한 번 손가락 자를 투표를 할 것인지 말지를 고민해 보자.
막장까지 내려앉은 지역 경제와 정치적 위상(位相) 그리고 풀 죽은 기(氣)를 살리려면 어떤 투표를 해야 할 것인가. 오랫동안 보수 성향으로 지목받아온 지역 언론들조차 드디어 '메기론(論)' 같은 경쟁의 견제 정치를 말하기 시작했다. 정치계에 몸담아봤던 원로 전직 시장은 '지역에서 1당(?) 독점은 박근혜의 대선에도 도움 안 된다'는 충고를 공개적으로 직언하고 나섰다. 정치권력의 흐름으로 볼 때 어쩌면 이번 선거는 우리 지역의 사활(死活=정치, 경제, 교육, 문화…)이 결판날 마지막 기회요, 분수령이 될 수 있는 성격을 띠고 있다.
만약 호남 쪽이 박근혜의 최측근인 이정현 새누리당 후보를 찍어 당선시키고 우리 쪽은 또 새누리 일색으로만 찍었을 때 타 지역 국민들의 반응이 어떻게 나올까를 상상해 보자. 답은 하나. '호남인들보다 못한 무변화의 꼴통 도시'로 왕따당한다. 정권이 10번은 더 바뀌어야 씻겨질 정도의 낙인으로 남을 것이다. 어디다 굴려 처박아둬도 고분고분, 막대기만 꽂으면 올데갈데없이 찍어주는 '털 뽑아 놓은 산토끼'처럼 굴어서는, 아무리 찍어줘 봤자 어느 누구도 살갑게 챙겨줄 리 없는 게 선거의 생리다. 지역 출신 대통령을 4명이나 뽑아준 살림살이가 오늘 이 모양 이 꼴인데 더 이상 또 일색으로 뽑아준들 뭐가 얼마나 달라질 것인가.
좋다, 그래도 노인 세대를 모욕하고 여성을 성(性)비하하고 종교를 능멸하는 저질 부류가 섞인 집단에 정권을 넘겨줄 수는 없으니 대선만은 미우나 고우나 또 그렇게 챙겨서 찍자. 그러나 총선만큼은 생각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 'TK가 새누리의 아성이 돼야 대선이 유리하다'는 지역주의 논리는 거꾸로 절대다수 표를 쥔 타 지역 대선 표를 갉아먹는 역풍만 불러올 궤변이다.
그럼에도 대구의 표심은 이상하게도 '김유신의 말(馬)'처럼 터벅터벅 새누리 일색의 길목으로 걸어가는 분위기다.(현재까지 전화 여론조사로는 그렇다.) 한 번쯤 다른 길로 가볼 때가 됐음에도 관성(慣性)에 홀린 듯이 풀 한 포기 돌 하나 바뀐 게 없는 무변화의 옛날 길을 무의식적으로 따라 걸어가고 있다. 그 길의 끝이 재기 불능의 벼랑 끝인지 쇠락의 골짜기인지 국민적 왕따인지도 모른 채 김유신의 말처럼 걸어가고 있다. 말에 탄 주인의 생각은 이건 아니다 하면서도 말발굽은 옛길을 향하고 있다고나 할까.
틀린 말인지 우리끼리 돌아보자. 투표의 잣대는 일단은 공약이다. 대구의 일부 '낙하산' 새누리 후보들이 내건 공약들은 새누리란 당 이름과 달리 '새것'은 없고 헌것만 있다고 언론들은 꼬집는다. 이미 구청 등에서 시행 중인 것들까지 짜깁기해서 급조해내 구청 직원들조차 황당해한다는 수준이니까 더 말할 것 없다. 그런데도 지지율은 올라간다.
일부 선거구는 무소속이나 초선 야당 후보들이 새누리 후보의 거부로 TV토론마저 기회를 박탈당했다. 그래도 공정성 논란은 없고 지지율은 요지부동이다. 이건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타성적 증세다. 종북 좌파 찍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대구로서는 한두 석(席)쯤 비보수에게 내주는 한이 있어도 더 큰 것을 얻어내는 통 큰 투표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번만큼은 극단적 종북 좌파와 입 더러운 무교양 저질 좌파 후보만 빼고는 야당이든 무소속이든 경쟁과 견제의 정치를 위한 투표를 해볼 때가 됐다.
어느 날 새벽, 김유신이 기생 천관의 집 앞에서 애마(愛馬)의 목을 베었듯 변화를 위한 각성의 칼을 빼들어야 한다. 대구의 유권자들에게 전 국민의 시선이 유독 쏠리고 있다.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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