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후학교는 기존의 특기적성교육, 방과후교실, 수준별 보충학습을 통합해 운영하는 교육체제다. 학생, 학부모의 다양한 학습 욕구를 충족시켜 사교육비를 줄이고 교육 격차도 완화하겠다는 것이 도입 취지다. 악기를 다루거나 축구, 농구 등을 배우는 예'체능 프로그램, 과목별 심화학습 등이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의 주된 내용이다.
하지만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다. 다양성과 질이 떨어진다는 것이 가장 많이 언급되는 문제. 학교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다. 교사 업무 부담이 크고 우수한 외부 강사를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또 한정된 예산으로 참여 학생 수가 적은 프로그램을 각 학교가 혼자 힘으로 운영한다는 게 현실상 어렵다고 호소한다. 최근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학교가 힘을 모아 방과후학교를 공동 운영하는 곳들이 늘고 있다.
◆미래의 과학자들 모여라, 진월초교
"소리가 안 나나요? 다시 한 번 제대로 끼웠는지 점검해보세요."
8일 오전 찾은 대구 진월초등학교의 과학탐구대회반. 10여 명의 학생이 전기 회로도를 만드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이날 수업 주제는 'IC형 4가지 경보음+변신 도깨비'. 발광 다이오드(LED), 트랜지스터, 전해콘덴서를 이용해 전기 회로도를 만드는 수업이다. 학생들은 핀셋으로 콘덴서, 전선 등을 집어 회로도에 하나하나 끼워 넣고 있었다.
김민수(월서초교 2학년) 군이 완성한 회로도에선 사이렌 소리, 시계 알람 소리 등이 울려 퍼졌다. "내가 만드는 데 따라 전기가 들어오고 소리가 나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어요. 앞으로도 이 수업을 계속 듣고 싶어요."
여러 초교에서 모인 학생들이 수업을 듣는다는 게 과학탐구대회반의 특색. 학교별 참가자가 많지 않아 개별적으로 운영하기 쉽잖기 때문에 진월초교에 월촌, 월서초교 학생들까지 모두 16명이 모였다. 과학탐구대회반은 모형항공기, 전자과학, 기계과학 분야로 나눠 지난달 초부터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강사는 오랫동안 교직에 몸담았다 퇴직한 전상곤(75) 씨. 고령에다 교단을 떠난 지 10년이 훨씬 지났지만 학생들에게 과학을 가르치는 열정만큼은 식지 않았다. 학생들이 만든 회로도를 꼼꼼히 챙겨주며 설명을 곁들였다. "탐구대회에 나가서는 전선을 적게 쓰고 짧게 연결해야 감점을 당하지 않아요."
진월초교는 5월부터 과학탐구대회반 외에 다른 초교 학생들이 들을 수 있는 방과후프로그램을 4개 더 운영할 계획이다. 월배초교, 진천초교, 상인초교와 함께 내년 2월까지 NIE(Newspaper In Education'신문활용교육)반, 사진반을 매일신문사와 연계해 진행하고 발표력 향상을 위한 스피치반, 수학 교구를 조작하며 창의력을 키우는 교구 수학반도 운영한다.
진월초교 구지혜 교사는 "다른 학교와 연계해 방과후프로그램을 운영하면 홀로 해야 하는 부담을 덜 수 있을 뿐 아니라 운영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했다.
◆하나로 모이면 더 큰 힘, 연합방과후학교
"혼자 해야 하는 부담도 덜고 서로의 강점도 나눌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대구 원화여고는 지난해 '셋 모아 하나 되기'라는 이름 아래 경화여고, 상서여자정보고와 함께 방과후학교를 운영했다. 사교육비 절감과 교육 격차 해소라는 취지에 맞게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을 다양화하려면 한 학교의 힘만으로는 벅차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 인근 고교끼리 힘을 모은 것이다.
이들은 각 고교가 강점을 보이고 있는 분야의 프로그램을 나눠 맡았다. 지난해 2학기 경우 영어와 수학 수업은 각각 원화여고와 경화여고가 책임졌다. 특기적성 프로그램 운영을 담당, 여름방학 때 제과제빵반을 운영했던 상서여정고는 바리스타반을 개설했다. 각 고교 1학년 참여 희망자 중 선발된 180여 명의 학생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교과 수업이 끝난 뒤 신청한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고교를 찾아 수업을 들었다. 바리스타반에는 원화여고 학생 18명, 경화여고 학생 2명이 참여했다.
각각 바리스타, 제과제빵 수업을 들은 원화여고 2학년 권민정, 이지은 양은 이 프로그램들이 학교생활의 활력소가 됐다고 입을 모았다. "호기심에 참여했는데 배울수록 재미있어 수업을 손꼽아 기다리게 됐죠. 특히 학교 축제 때 일일 카페를 열어 친구들에게 우리가 만든 커피와 빵을 판매한 것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학교에 다니면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원화여고는 올해도 상반기 중 방과후학교를 다른 학교와 함께 운영할 계획이다. 지난해 함께했던 상서여정고 대신 원화중이 참여하는데 원화중은 학습코칭, 진로탐색 프로그램 운영을 맡게 된다. 원화여고 김진규 교감은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우선 참여 기회를 주는 등 교육 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도 병행한다"며 "이 프로그램이 더욱 활성화된다면 다양한 체험활동과 맞춤형 수업이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시골도 문제없어요, 경주 지역연합형 프로그램
경주 양동초등학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양동마을 초입에 자리한 학교. 5월부터 이 학교를 중심으로 안강여중 등 인근 11개 초'중학교를 하나로 묶어 토요일과 방학 기간 동안 전통문화의 발자취를 짚어보는 양동마을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아화초등학교를 거점으로 인근 건천초교, 아화중 등 7개 학교는 토요일 아화승마장에서 승마 체험을 하는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스포츠 활동도 눈에 띄는 지역연합형 방과후학교 프로그램. 골프 연습장이 있는 사방초교, 서라벌초교 등을 중심으로 골프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여름방학 중 교육장기 방과후학교 골프 대회도 열 계획이다. 나산초교와 양북중을 거점학교로 해 초교 4개교, 중학교 2개교가 함께 한국수력원자력 월성원자력본부의 스포츠센터를 활용한 프로그램이 진행될 예정이다.
농촌 지역은 도시보다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하기에 어려움이 더 크다. 경주 외곽 지역도 마찬가지. 전체 지역은 넓지만 학교 대부분이 소규모인데다 학생 수까지 감소 추세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각 학교가 학생 수요에 맞춰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을 개별적으로 운영하기 힘든 형편이다.
이 때문에 경주교육지원청은 인근 학교끼리 묶어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을 운영, 시설과 인력을 공동으로 이용토록 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미 교육과학기술부의 지역연합방과후학교 공모 사업에 선정돼 곧 8천만원의 예산을 지원받는다.
경주교육지원청은 이달 내로 참여 학교 관계자들을 모아 운영 회의를 마무리하고 거점학교별로 참가 신청을 받은 뒤 다음 달부터 이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경주교육지원청 류학훈 장학사는 "농산어촌 학교에 재학하고 있는 저소득층 자녀를 대상으로 지자체의 대응투자를 받아 수강료를 전액 지원한다"며 "여러 학교가 뭉치면 교사의 업무 부담이 줄 뿐 아니라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학교 교육의 신뢰도와 만족도도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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