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좋은생각 행복편지] 두 남자의 상처

며칠 전 작은 사고가 두 가지 있었습니다. 바람이 세차게 불던 날이었습니다. 주차장 출입문이 바람에 꽝 닫히는 바람에 친정아버지가 손가락을 다치셨습니다. 손가락뼈에 금이 가고 깁스를 해야 했습니다. 손톱도 심하게 일그러졌습니다. 비슷한 시각, 집 안에서는 막내 아이가 그릇 위로 넘어지면서 입술 위쪽이 쿡 찍혀 찢어졌습니다.

물론 그 시간 저는 사무실에 있었고 전화 통화로 두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우선은 아버지 다치신 소식에 놀랐고 뒤이어 아이도 걱정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병원에 다녀오셨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고 아이는 병원에 가지 않았다 하니 일상적인 상처려니 싶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퇴근 후 아이 얼굴을 보니 상처가 생각했던 것보다 커 보였습니다. '병원에 데려가 주시지 그러셨어요'라는 말이 불쑥 나올 뻔했지만 이내 참아야 했습니다. 아버지가 다치셔서 경황이 없으셨을 테고 무엇보다 부모님도 그냥 둘만 하니 두셨을 테니 말입니다. 그렇지만 상처를 다시 들여다보니 흉터가 남을 것 같았습니다. 당장 애를 둘러업고 병원에 갈 수는 없었습니다. 그 행동은 분명 병원에 데려가지 않으신 부모님에 대한 원망의 표시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친구에게 이 상황을 이야기하니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무조건 어른들 판단을 따르고 입 다물고 살아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직장 생활을 한답시고 육아라는 엄청난 노동을 친정어머니, 아버지께 맡기는 죄인입니다. 성인이 될 때까지 고이 길러 주신 것만으로도 큰 은혜인데, 자식을 그것도 하나 둘도 아닌 셋이나 맡겨놓았으니 이만저만한 큰 죄를 짓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피부 재생력이 좋으니 금세 새살이 돋아날 것이고 흉터가 남더라도 크지 않을 게 분명합니다. 괜한 기우에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어른들 마음에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남길 이유가 없습니다. 게다가 흉터로 치면 아버지 손가락 상처가 더 클 텐데 말입니다. 아버지와 아이, 이 두 남자의 상처로 인해 저는 짧은 시간이나마 제 마음 깊은 곳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남에게 아이를 맡겨 출근 후에도 불안해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저는 얼마나 큰 복을 받고 있는지 모릅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은 값비싼 보육시설이 자랑하는 프로그램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큰 자양분입니다.

그렇지만 육아는 정말 힘든 노동입니다. 아직 손이 많이 가는 나이의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일만으로도 하루 일과는 빡빡합니다. 직접 키우지도 않으면서, 게다가 주말 부부로 살고 있으면서, 애만 많이 낳았다고 구박하실 때도 많지만 모두 딸이 힘들게 사는 것 같아 안타까워 하시는 말씀이십니다.

귀가 시간이 일정하지 않은 딸 대신 밤낮으로 아이들과 씨름하시느라 엄마는 세월 가는 줄 모르겠다고 푸념하곤 하십니다. 그러다가도 며칠 아이를 못 만날 상황이 되면 궁금하고 걱정이 된다는 전화를 걸어오십니다.

막내 녀석은 유독 잠이 없습니다. 새벽까지 보채는 애 때문에 몇 차례씩 잠을 깰 때면 엄마는 '출근해야 하는데 피곤해서 어쩌노. 저놈의 자슥, 엄마 고생시킨다. 내가 업을 게'하시며 아이를 둘러업고 거실로 나가십니다.

큰아이가 여섯 살 무렵, 차 안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엄마, 나는 커서 간호사가 될 거야. 그리고 아이를 세 명, 아니 네 명 나을 거야." "엥? 아이를 네 명이나 낳아서 어떻게 키우려고?" "엄마, 아빠가 키워주면 되잖아." 순간 말문이 막혀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아이들은 보고 자란 그대로 생각하고 말을 한다더니 꼭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다음날 친정 엄마께 이 이야기를 전해 드리면서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엄마, 나는 엄마처럼 우리 애들한테 해줄 수 없을 것 같아요." 엄마는 덤덤히 대답하셨습니다. "왜, 다 한다. 자식인데 다 할 수 있는 거다."

자식에게라면 노년의 귀한 시간과 노동까지도 아낌없이 내주는 마음. 그 큰 마음을 알아가기엔 아직은 초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리고 나라면 못하리라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흉터가 될 큰 상처보다 아들의 작은 상처에 더 신경이 쓰이는 것이 어쩌면 내리사랑이고, 유전자 깊이 새겨져 있을 모성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평생 갚지 못할 그 진하고 큰 사랑을 아마도 30년쯤 후 내 딸에게 갚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간호사가 된 딸의 아이들을 정신없이 돌보며 아마 지금의 엄마를 떠올릴 겁니다. 그 사랑이 묽어지지 않고 더 진하게 계속되는 인류의 비밀, 바로 이것이 아닐까요.

임언미/대구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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