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 광장] 봄날의 여유 가지기

며칠 전 무심코 달리던 신천동로에서 오후의 따사로운 봄 햇살과 함께 만개한 벚꽃을 본 감흥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주위를 화사하게 물들이는 꽃들을 보면서 그간 쌓였던 피로가 확 풀리는 기분이었다. 지난해 어느 지인에게서 벚꽃이 만개한 걸 보지도 못했는데 벌써 다 지고 있다고 하소연하는 소리를 듣고 위로한 기억이 있기에 느껴지는 감동이 배가 되는 듯했다.

일 년 중 이맘때가 되면 어김없이 우리를 배신하지 않고 자연은 우리에게 자신들의 몸을 활짝 만개시켜 봄이 왔음을 확실히 알린다. 일 년의 사분의 일이 지나가고 있음도 함께 알리며 말이다.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변하고 있고 촌각을 다투며 무한경쟁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기에 하루의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어 써도 항상 바쁘고 쫓기기는 필자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필자는 아침 출근길에, 아니면 일과 중 잠시라도 짬을 내 바깥을 한번 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길가의 벚꽃들이, 노란 개나리가 그새 얼마나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가를….

바쁘게 하루하루를 살다 보니 정작 우리에게 힘이 되고 한번쯤 기분 좋아지는 멋진 장면들이 주는 작지만 강한 행복감을 놓치게 되는 경우가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다. 아름다운 자연이 주는 이 찰나의 장면을 놓쳐버린다면 그 얼마나 공허함을 느낄까 싶다.

사소하게 여겨지는 매순간을 놓치지 않는다는 것도 우리 인생을 즐겁게 살아가는 데 있어 참 중요한 부분인 것 같다.

사실 필자는 업무상 출장이 잦아 비행기로 이동할 일이 꽤나 많다. 그럴 때면 긴 여정이건 짧은 여정이건 간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이것저것 생각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주어짐에 오히려 감사한다.

오래전 모 브랜드의 디자이너로 있을 때 우연찮게 앉은 기내 창가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던 기억이 있다. 어쩌다 기내 창가에 앉는 날엔 너무나 아름다운 자연이 주는 선물에 감동하고 더더욱 작게만 느껴지는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며 나 자신이 좀 더 겸손해지기를 다짐하곤 했다.

"아웅다웅하며 살지 말아야지…." 하늘 위에서 보는 인간 세상이 얼마나 작게만 느껴지는가. 우리의 일상에서 너무도 소중한 모든 것들이 그렇게 작게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그렇게 높이 올라가는 아파트들도, 수많은 종류의 자동차들도 레고 블록이나 미니어처 장난감 정도로밖엔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하늘 위에서 보면 모든 것이 이 두 손안에 다 들어오니 말이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내 앞에 닥쳐 있더라도 하늘 위에서 한번 내려다보면서 객관적인 자세로 한번 본다면 지금 현재 직면해 있는 어떤 힘든 일들도 별일 아닌 듯 잘 헤쳐나갈 수 있지 않겠나 싶다.

사실 자신의 마음을 다시 다잡고 내려왔다가도 시간이 지나면서 언제 다짐했느냐는 듯이 어느새 또다시 아웅다웅하며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살면서 때로는 오로지 시간에 묶여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보다 잠시 자신을 위해서 멈춰 설 수 있는 여유를 가지기를 반복해야 할 것이다.

삶의 여기저기에서 소소하고 작은 행복들을 더 많이 찾아내며 오늘 당장 한번씩은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는 여유를 가져봄이 어떨까 싶다. 잊지 말고 꼭 5분만 할애해 보자.

자연이 주는 찬란한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건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을 좀 더 즐기며 살 수 있는 비결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느리게 찬찬히 여유를 가지고 자신을 한번 돌아보는 것은 자신의 삶에 진정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더러는 쉽게 지치기도 하는 일상에서 자신에게 진실해지고 자신의 일을 즐기며 한번쯤 자신을 충분히 돌아본다면 지금보다 좀 더 겸손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김건이/패션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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